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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은행강도'로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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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3 07:00:00 수정 : 2018-09-13 07: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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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한국판 은행강도①] 불황의 그늘서 움트는 '범죄의 유혹'
고깃집 여사장·배관업 30대 가장 등 / 생활고 속 빚 독촉에 지쳐 어설픈 범행 / 올들어 5건…장기 불황의 '슬픈 자화상'
테러로 경찰의 눈을 돌린 다음 연방준비은행의 금고를 터는 은행강도를 막아서는 경찰의 고군분투기를 다룬 영화 ‘다이하드3’부터 ‘폭풍속으로’, ‘롯아웃’, ‘스탠더’….

은행 강도는 지금까지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단골소재로 등장했다. 이러한 영화는 대부분 총기소지가 가능한 미국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반면 한국의 은행강도는 일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 하는 드문 사건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시중 은행이나 금고 등을 중심으로 은행강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판 은행강도는 왜 일어나고, 이어지고 있을까. 누구나 의심치 않았던 안전한 금고였던 은행이 강도들의 위험에 노출돼있는 실태를 살펴봤다.

지난 10일 발생한 충남 당진시 송악농협 은행강도.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빚독촉’…고깃집 여사장을 은행강도로 만들다

창구의 문을 막 열던 지난 10일 오전 9시, 충남 당진의 한 농협 지점에 50대 여성 강도가 등장했다.

은행강도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양봉용 그물 모자를 쓰고 나타나 자동 못총을 들고 은행원을 협박한 이 여성은 범행 장소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조그만 고깃집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고, 쌓여있는 빚 9억원을 갚기 위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가 은행원과 고객들을 협박하는 과정에서 못 6개가 발사됐지만 직원과 손님 중 다친 사람은 없었다.

지난 10일 송악농협 강도가 범행에 사용한 자동 못총. 연합뉴스.
그녀가 농협을 털어 가져간 돈은 현금 2750만원. 그녀는 결국 범행 후 3시간만에 인근 야산에서 만취상태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7일 포항에서는 한 새마을금고에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강도가 털어간 돈은 460만원이었다. 가족의 설득 끝에 범행 당일 밤 늦게 자수한 강도는 경찰 조사에서 “생활고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빼앗은 돈은 빚을 갚는데 다 썼다”고 진술했다.

지난 6월 경북 영주의 새마을금고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사건도 마찬가지로 생활고에 못이겨 저지른 범행이었다. 식당운영 등을 하다 1억원의 빚을 진 범인은 훔친 돈 4380만원 중 3720만원을 채무 변제에 썼다. 지난 6월 경북 영천의 한 새마을금에서 현금 2000만원 빼앗아 도주했다 6시간 만에 붙잡힌 경우도 빚 독촉 때문이었다.

지난달 7일 강도가 발생한 경북 포항시 한 새마을금고. 연합뉴스
◆배관업 30대 가장도 빚 갚기 위해 은행강도로

“오직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내와 아기가 보고 싶다. 죄값은 받겠다.”

배관업을 하던 30대 가장 최모씨는 지인의 보증을 섰다가 800만원을 떼였고 결국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4000만원까지 불어났다. 최씨는 빚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최씨는 사업을 정리하고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살기로 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

카드 빚에 허덕였고 끝내 그는 아내의 금반지마저도 내다 팔았다. 그렇게 그는 은행강도가 됐다.

최씨가 은행강도가 되길 결심하고 처음 한 것은 무기를 고르는 일이었다. 그는 한 대형마트에 들러 장난감 K-2소총을 구입했다.

 그리고 2008년 5월 전북은행 신동지점의 뒷문으로 침입해 창구에 있던 현금 400만원을 빼앗아 도망쳤다.

지난 2008년 ‘모형총기’ 은행강도 30대 가장이 가족에게 남긴 편지. 연합뉴스
범행 후 죄책감을 느낀 김씨는 사건 다음날 자신의 집에서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를 가족에게 남겼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에는 “오직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내와 아기가 보고 싶다. 죗값은 받겠다. 사람이 안 다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적혀 있었다.

최씨는 은행에서 강탈한 400만원 중 30만원은 유류대금 등으로 사용하고 현금 370만원과 편지는 자신의 집 냉장고에 숨겨놨다가 경찰에 압수됐다.

◆잇따르는 은행강도…암울한 경제 양극화의 단면

“우리 집은 대대로 가난했어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저도요. 그 가난이 주위의 있는 모든 이들을 전염시키더군요. 그런데 제 자식은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어요.”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 테너 형제는 가난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은행강도가 된다. 그들은 서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은행에 저당잡힌 어머니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고 은행으로 쳐들어간다.

최근 국내에서 잇따르는 은행강도 범죄는 대부분 빚도촉이나 채무변제 등을 이유로 일어난다. 수십억원을 강탈하기 위한 계획범죄가 아닌 대부분 생활고에 못이긴 어설픈 범죄다.

우리나라에서 은행강도는 대부분 빚과 가난, 생활고로 인해 일어난다. 많은 피의자들은 현금 몇백만원을 쥐기 위해 장난감 권총에 식칼, 자동 못총을 들고 어슬픈 계획으로 복면을 쓰고 강도로 돌변한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 셈이다.

특히 최근 어려운 경기로 인해 은행강도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올해에만 새마을금고를 타겟으로 한 은행강도건만 울산,아산,영천,영주,포항 총 5곳에서 발생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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