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칼럼에서 이스트먼 코닥사와 코닥사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에 대해 얘기했다.
조지 이스트먼은 1892년 이스트먼 코닥사를 설립했다. 이미 1881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었는데, ‘코닥’이라는 명칭을 처음 등록, 사용한 것은 1988년이었다. 필름 제조사였던 코닥사는 1890년대 영화의 탄생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코닥사가 사진용으로 개발한 셀룰로이드 재질의 롤필름이 몇 가지 보완을 거쳐 영화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용 필름은 영화용 카메라, 영사기와 더불어 영화 탄생의 필수 조건이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필름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볼까 한다. 기다림과 관련하여.
약 120년이 흐른 현재, 필름 자체가 잊혀져가고 있다. 사진과 영화 분야 모두에서 필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필름이라는 저장매체는 플래시 메모리, 하드 등의 디지털매체로 대체되었다. 덕분에 매우 편리해진 점도 있고, 불편해진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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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코닥카메라와 액서사리들, 출처 = Courtesy of the George Eastman Museum |
필름이 장착된 카메라를 늘 가지고 다니기도 번거로웠고, 카메라에 장착된 롤필름의 용량은 24장, 36장 정도로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여유 필름을 더 구입해 챙긴다 해도 요즘처럼 순식간에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의 기다림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일단 필름 롤의 용량인 24장이나 36장의 사진이 모두 촬영되어야 했다. 예를 들어 몇 달 동안 온갖 가족 행사 기념사진을 다 찍어 36장을 채운 다음에야 카메라에서 필름을 빼내어 현상소에 맡길 수 있었다.
현상소에 맡긴 후에도 기다림은 계속 됐다. 수십 분이면 현상과 인화가 완료되는 현상코닥현상소, 후지현상소 등이 등장한 시기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던 필름의 감광물질이 닦여지고, 추가 광학 작업이 이루어져야 따끈한 사진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혹 추가로 사진을 갖고 싶다면, 해당 네거티브 필름을 찾아 현상소에 다시 맡겨 또 기다려야했다.
‘초점이 맞지 않았구나, 너무 어두웠구나, 눈을 감았었구나. 표정이 이상했구나.’ 등은 그 기다림이 끝난 후에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사진 찍을 때 더 긴장했고, 이후 기다리는 공안 설레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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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만 저택에 전시중인 코닥 카메라들, 필자 촬영 |
그런데 이런 기다림도 있었다. 1988년 코닥사는 처음으로 아마추어용 카메라를 시판했다. 25달러짜리 코닥카메라에는 사진 100장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이 이미 장착되어있었는데, 사용자들은 촬영을 다하면 현상소에 가는 대신 코닥사로 카메라를 통째로 보내야했다. 아직은 전국적으로 현상소가 생기기 전이니까 당연한 상황이었다.
코닥사는 카메라를 받아 필름을 빼 내어 현상과 인화를 했다. 그리로 새 필름을 장착해 인화한 사진들과 함께 다시 고객에게 보냈다. 총 비용은 10달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카메라가 소위 대박이 난 것이다. 누구나 사진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거였으니 말이다. 요즘 생각하면 매우 번거롭고, 지루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상을 기록하고 기념할 수 있다는 건 매우 매력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디지털화된 매체와 장비를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들을 촬영하게 되면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수정과 추가 작업 등을 할 수도 있고, 비용과 시간도 절약되고 분명 편리해진 점도 많다. 감상하고 공유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아날로그 매체들이 요구했던 기다림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기다림을 불러오기도 했다. 필름을 비롯한 . 순식간에 찍은 수백 장의 사진과 영상들 중 SNS로 공유할 최종 사진이나 영상들을 골라내는 일이라든지, 그 사진 파일을 보기 위해서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 설치해야한다든지, 새로운 과정과 노력이 필요해지기도 했다.
물론 플래시 메모리와 하드를 잘 보관해야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보기위해서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같은 추가적인 장비가 필요하고, 배터리든 어댑터든 전력을 확보해야하는 등 새로운 번거로움이 생기기도 했다.
좋고 나쁨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달라짐을 애기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기다림이나 불편함은 긴장감과 설렘을 주는 것 같다. 결국 우리가 이용하고 즐기기 나름일 것이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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