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듭된 폭염으로 산책 시간을 늦추다 이제는 한밤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땅이 좀처럼 식지 않아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다행히 동네에는 밤에 걷거나 뛰는 사람이 많았다. 한밤의 산책자들 사이에 섞여 걷다 보면 익숙해진 얼굴도 몇몇 눈에 띄었다.
내가 언제 나가든 무조건 마주치는 짧은 머리 남성은 언제 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는 데 진심이었다. 타이트한 민소매 셔츠 차림에 안정된 포즈로, 발소리도 숨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달리는 모습이 선수인가 싶을 정도였다. 헤어밴드를 한 중년 여성은 항상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었다. 오렌지와 민트, 라임에 이르기까지 만날 때마다 종아리 색이 바뀌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느리게 걷는 덩치 큰 노인도 있었다. 그는 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며 큰 소리로 화를 냈다.

꼭 같은 자리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는 자다 깬 것처럼 뒤통수가 항상 부스스했다. 품이 넓은 티셔츠를 입고 운동하는 동네 주민일 뿐인데 나는 그가 꽤 신경 쓰였다. 왼쪽으로 깊게 기운 상체 때문에 옆구리를 움켜쥔 것처럼 보이는 뒷모습이 특히 그랬다. 보폭이 좁고 자세가 나빠 아주머니는 당장에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칠비칠 뛰었다. 그러나 용케 더는 기울어지지 않았고, 가느다란 다리를 꾸준히 앞으로 뻗었다.
나는 그런 뒷모습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어깨를 한껏 옹송그린 작은 체구의 사람. 개흉 수술을 한 뒤 엄마는 한동안 몸을 곧게 펴지 못했다. 아픈 심장을 숨기려고 어깨와 등이 잔뜩 오그라든 채 굳어버린 것 같았다. 제대로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모자로 숨기고, 공벌레처럼 몸을 만 채로 엄마는 매일 집 주변을 걸었다. 사람이 적은 밤 시간을 골라 느릿느릿 손과 발을 뻗었다. 신음과 함께 기지개를 켜보고 어깨를 조금씩 돌려보기도 하면서, 그러나 함께 걷기엔 조금 창피한 모습으로 말이다. 쪼그라든 채 옴짝거리던 엄마는 간혹 내게 물었다. “너무 보기 흉하냐?” 사실은 그래 라고 대답하면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다시 걸었다. 그러고는 툭 내뱉었다. “지금의 내겐 이게 최선이야.”
그저 걷는 것일 뿐이지만 엄마의 최선은 날이 지날수록 각도가 좋아졌다. 우스꽝스럽고 다소 궁상맞던 자세도 눈에 띄게 반듯해졌다. 걷는 시간이 아침저녁으로 늘고 요가를 시작한 시점부터는 자신의 모습이 보기 흉한지 더 묻지 않았다. 아주 느리지만 분명하게, 최선을 다한 밤들이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회복이란 무언가를 부러뜨리고 이어 붙이듯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손을 뻗어 기울어진 바를 다잡아나가는 과정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밤의 산책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금, 기어코 우리에게 도래할 반듯한 날들을 상상한다. 지난한 시간을 건너 여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안보윤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