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Kodak)’ 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시는지?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도시 로체스터에는 꼭대기에 거대한 ‘KODAK’이라는 글씨가 설치된 건물이 있다. 바로 코닥사 본사 건물이다. 한때 로체스터 인구 중 상당수가 코닥사 직원일 정도였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현재는 과거에 비해 회사 규모와 주력 사업 등이 크게 달라진 상황이다.
이번 여름, 로체스터에 코닥사 본사를 비롯해 관련 박물관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했지만, 과거의 영광이 느껴지는 본사 건물을 막상 발견했을 때 여러 생각과 느낌이 들었다. 오늘부터는 한동안 코닥사, 정확하게는 이스트만 코닥사(Eastman Kodak Company)와 관련된 이야기를 얘기해볼까 한다. 먼저 필름 이야기부터.

코닥이라는 이름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24장이나 36장짜리 코닥필름으로 사진을 찍었고, 동네 코닥현상소에 찍은 필름을 맡겨 현상과 인화를 했었다. 물론 다른 회사 이름의 필름과 현상소도 있었다.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필름들 중에도 코닥필름이 있었다. 영화인들은 코닥필름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었는데, 가격이 더 비싸서 늘 코닥필름으로 촬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작을 흥행시킨 감독이 차기작 계약 조건으로 코닥필름 사용을 제시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느새 우리는 사진 촬영을 위해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주변에 그 많던 비디오가게가 사라졌듯이 현상소도 사라져서, 소장하고 있던 필름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해도 현상인화를 해서 볼 수가 없다.
영화도 그렇다. 국내에는 더 이상 영화필름 현상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름으로 촬영되어 현상인화까지 된 마지막 한국영화는 ‘코리아’(감독 문현성, 2012)이다. ‘설국열차’(감독 봉준호, 2013)도 필름으로 촬영되었지만, 현상과 인화 작업은 주 촬영지였던 체코에서 진행되었다.
영화 제작 당시 ‘설국열차’의 홍경표 촬영감독도 ‘코리아’의 이두만 촬영감독도 모두 필름 촬영의 장점을 강조했다. 이두만 촬영감독은 필름 가격, 현상인화 비용 등 필름 촬영 비용이 디지털 촬영 비용 대비 너무 높아져 필름 촬영의 장점을 압도했다고 기억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미국에서는 영화 촬영에 필름이 사용되는 경우가 과거보다는 줄었지만, 유명 감독들의 영화의 경우,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필름으로 촬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편집, 녹음, CG 등 후반 작업은 디지털로 진행되지만 말이다. 코닥에서도 과거처럼 대량 생산은 아니지만, 필름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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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George Eastman Museum |
1890년대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탄생한 영화 중 특히 미국영화의 경우 코닥의 역할도 컸다. 토마스 에디슨이 개발한 미국 최초의 영화용 카메라와 영사기에는 모두 코닥에서 개발 생산한 필름이 사용됐기 때문이다.
코닥사는 1880년대 대량생산이 가능한 사진용 롤필름을 개발했고, 1888년 일반인용으로 필름이 내장된 사진카메라를 개발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리고 1890년대에 이르러 영화용 필름까지 개발하면서 이후 약 100년 간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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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the George Eastman Museum |
필름이 더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필름이 매우 급작스럽게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것이다. 영화 탄생의 절대적 공로를 세웠지만, 100년을 넘기지 못한 사실에 신기해하는 것이다.
코닥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필름과 더불어 잊혀져가고 있는 회사 이름이다. 이미 많이 변화된 코닥의 앞으로의 변화도 지켜볼까 한다. 필름의 마지막 혹은 부활도 지켜보면서.
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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