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모든 실국장에 검사가 임명됐던 1980년대 초반 전 전 대통령이 그때만 해도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서울구치소를 불시에 방문했다. 소장실에서 업무보고를 받던 전 전 대통령 눈에 응접실 탁자 유리판 밑에 깔린 법무부 조직도가 들어왔다. 교정국장(현 교정본부장)과 출입국관리국장(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자리에 ‘검사장 아무개’라고 적힌 걸 보고선 “이런 직책을 왜 검사가 맡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당황한 법무부는 부랴부랴 출입국관리국장을 일반직으로 전환했다”며 “다만 교정국장은 당분간 검사가 계속 맡아야 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해 일단 관철시켰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는 1983년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장을 기존 검사장에서 2급 공무원이 보임되는 직책으로 바꾼다’는 내용의 고시를 했다.
이렇게 해서 검사 대신 출입국관리직 공무원이 출입국행정 총수를 맡는 관행이 생겨났다. 법무부 탈검찰화의 효시가 된 셈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03년 노무현정부는 출입국관리국장을 아예 ‘개방직’으로 선포했다. 법무부 공무원 말고 외부인사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직제를 고친 것이다.
이후 법조인 출신인 이민희(2003∼2005), 강명득(2005∼2007) 변호사와 외교관 출신인 추규호(2007∼2009) 전 주영대사 등이 차례로 출입국행정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외부인사 중에서 출입국본부장을 고르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 법무부 감찰관과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개방직으로 전환하면서 줄어든 검사장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검찰 내부 목소리도 빗발쳤다.
결국 법무부는 2009년 다시 직제를 고쳐 출입국본부장을 검사장이 임명되는 보직으로 환원했다. 이후 석동현 전 부산지검장을 필두로 검사장들이 지난해까지 출입국본부장 자리를 거쳐갔다.
1980년대 초 전 전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도 법무부 교정국장이 검사장을 위한 자리로 계속 유지된 건 검사들의 ‘저항’이 그만큼 집요했기 때문이다. 교정국은 법무부 인력과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검찰총장은 서울중앙지검만, 그리고 법무장관은 교정국만 각각 잘 챙기면 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검사들 입장에선 당장 검사장 보직 하나가 줄어드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렸다. 교도관 출신으로는 처음 법무부 교정국장을 지낸 이순길씨는 2009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당신이 4년 넘게 교도소 수감생활을 해서 그런지 교도관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며 “취임 후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도관 사기 진작을 위해 교정국장을 교정직에 넘길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1999년 이씨가 법무부 교정국장에 임명되며 교정국의 탈검찰화가 성사됐다. 2007년 교정국에서 교정본부로 승격한 뒤에도 교도관이 본부장에 임명되는 관행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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