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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비싼 주거비에 '지옥고'살이…"희망 품고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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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13 19:50:10 수정 : 2017-09-13 21: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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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빈곤’ 허덕이는 청년들의 서글픈 현실 / 허리 휘는 주거비 고통 / 소득 비해 높은 부담 … 노인보다 열악 / 서울 청년가구 40% 주거빈곤 신세 / 취약한 방범시설… 안전사고 무방비 / 고용절벽·저임금 현실에 미래 암울 / 주거난민 추락… 결혼·출산도 포기 / “청년층도 주거약자… 지원대책 절실”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나/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월세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네/이래 힘들라꼬 집 떠나온 것은 아닌데/점점 더 지친다 이놈에 서울살이.’(노래 ‘서울살이’ 중에서)

밴드 ‘장미여관’은 ‘서울살이’가 고달프다고 이렇게 노래한다. 뼈빠지게 벌어도 내집 마련은 꿈인 것만 같고 꼬박꼬박 내야 하는 월세는 버겁기만 하다는 거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활동 중인 김영호(27)씨에겐 이런 가사가 사무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그는 본격적인 취업준비와 함께 그동안 머물던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개강을 하면서 하숙비가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뛰어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누우면 머리와 발 끝이 벽에 닿을 정도로 좁은 방인데 월세는 40만원에 가깝다.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 사는 오늘날 청년의 서글픈 주거 현실이다.

◆‘지옥고’ 맴도는 청년들… 쾌적한 주거환경은 ‘사치’

소득에 비해 형편없이 높은 주거비는 청년들을 괴롭힌다.

13일 통계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사회조사와 인총 표본조사 연계자료 분석 및 활용’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 세대의 주거빈곤 가구 비율은 전체 청년가구(249만5696) 중 20.3%인 50만5492가구로 나타났다. 빈곤가구 비율이 각각 11.2%(366만3234가구 중 40만9483가구)와 6.3%(283만5928가구 중 17만7633가구)인 노인가구, 아동가구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는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주거비 부담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일자리가 많고 교육 인프라가 우수한 서울에서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진다. 전국 청년가구의 23.7%가 서울에 몰렸고, 이 가운데 주거빈곤 상태에 빠진 가구는 40.4%나 됐다. 이 중 과도한 주거비 부담으로 주거빈곤에 해당하는 비율은 32.7%로,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18.6%)와 주거환경이 열악한 경우(27.8%)보다 앞섰다. 청년 대부분이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곳을 찾아 지옥고를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옥고라 통칭되는 주거시설은 쾌적한 주변 환경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다.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박모(24)씨는 밤마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음 때문에 괴롭다. 방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내벽이 매우 얇아 옆방에 사는 사람의 일상적인 소리가 모두 들리기 때문이다. 박씨는 “얼마 전에는 옆방 사람이 늦은 밤까지 전화 통화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바퀴벌레 등 해충이 서식하는 것은 ‘별 일’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로 흔하다. 

주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이 지난해 실시한 ‘주거안전 실태조사’(355명 대상)에서 현재 독립해 살고 있다고 응답한 20∼30대 242명을 분석한 결과 지하, 반지하, 옥탑방에 사는 이들 중 43명(12%)은 방범시설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이 살고 있는 건물 중 경비실과 외부 침입 경보기가 설치돼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주택(93.1%)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았고 절반 이상(62.1%)은 현관 출입구에 보안 장치가 없었다. 방범시설이 단 하나도 설치되지 않은 건물에 살고 있는 청년은 36.7%나 됐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청년들은 각종 범죄와 안전사고에도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다.

조사에 참여한 한 남성은 “지나가던 취객이 문을 두드리거나 심지어 라이터로 현관에 불을 붙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며 “집에 불이 났는데 좁은 골목길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참담했던 경험을 전했다. 

◆비싼 집값… 희망이 없다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힘든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등에 대한 희망도 포기한 지 오래다. 고용절벽, 미약한 임금상승 가능성 등 열악한 현실에 비해 집값 부담이 커지자 아예 안정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있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6∼7월 수도권과 부산에 거주하는 1인 청년가구 500명의 주거환경 등을 조사한 ‘1인 청년가구 주거여건 개선을 위한 정책지원 방안’ 보고서는 주거비 부담이 청년들의 연애, 결혼, 출산 등에 장애로 작용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구원이 주거비 부담이 연애·결혼 등 의사결정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0’(아무 영향 없음)에서 ‘100’(매우 영향을 줌)까지 수치화해 분석한 결과 ‘내 집 마련’은 87.2점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양육, 결혼에는 각각 86.7점, 83.1점으로 조사됐다. 연애 여부와 상관관계도 ‘약간 심각한 수준’인 65.4점이 나왔다.

청년들이 ‘주거난민’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어지자 대책 마련 움직임도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현아 의원(자유한국당)은 청년을 주거약자에 포함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긴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소득과 자산이 일정 이하인 청년과 노숙인 등 실질적 주거약자도 주거 안전망 내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현행법은 주거약자를 고령자와 장애인, 국가 유공자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김 의원 측은 “그동안 청년계층은 실질적으로 주거 약자이면서도 주거 대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며 “이들을 포함해 주거약자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구체적인 주거 지원 정책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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