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법’ 논의가 불붙었다. 1973년 버몬트주를 시작으로 대부분 주에서 이 법이 도입됐다. ‘제노비스 신드롬(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데 주저하게 된다는 방관자 효과)’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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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가해 여중생 2명이 피해 여중생을 폭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이런 사건들이 잊을 만하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올해 3월 국회 국가재조포럼과 자유한국당 박성중 의원실이 주최한 착한 사마리아인법 공청회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 논점을 톺아본다.
◆개인 자유 vs 공동체 연대감…팽팽한 찬반
착한 사마리아인법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도덕적 의무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서 착한 사마리아인은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인(팔레스타인 사마리아 부근에 살던 민족)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당한 행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정성껏 돌봤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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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조치 등 불이행 관련 현행 처벌 규정 체계. 국회 입법조사처 제공 |
11일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착한 사마리아인법 도입 찬반론의 핵심은 크게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로 구분된다.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도입을 반대한다. 구조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면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고,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건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난다는 설명이다.
공동체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에 빠져 익사 직전인 사람을 발견했을 때 119나 경찰에 신고할 정도의 법적 의무는 무방하다는 설명이다.
당시 공청회에 발제자로 나선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는 “위난에 처한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 의무는 공동체 생활에서 인간의 도덕적 의무만이 아니라 윤리적 의무의 최소한인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형법에 도입되면 순수한 도덕적 동기로 타인을 돕는 착한 마음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법의 처벌을 면하기 위한 약삭빠른 행동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며 “‘형벌만능주의’는 시민 사회의 성장을 가로막는 폐해를 낳는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주요국은 이미 도입…스위스는 3년 이하 자유형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이미 시행 중인 국가들이 적지 않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법을 처음 도입한 버몬트주는 주법률에 구조불이행죄를 규정하고 있다. 신체적 손해에 노출된 사람에 대한 구조 의무를 고의적으로 위반하면 100달러(약 11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스위스는 형법에 따라 구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타인이 구조 의무를 하지 못하게 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자유형이나 일수 벌금형에 처한다. 프랑스도 형법에 따라 5년 이하의 구금형과 7만5000유로(약 1억159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다만 구조 행위를 하게 되면 자신이나 제삼자가 위험해지는 경우 등은 예외적 상황으로 두고 있고, 스위스와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경죄나 경범죄로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우리나라는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도입하진 않았지만 이 법의 정신이 구현됐다고 볼 수 있는 여러 법 조항이 존재한다. 응급 환자에 대한 신고 및 협조 의무, 민형사상 책임 면책 등을 명시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서 착한 사마리아인법을 도입하려는 노력도 없지 않다. 박성중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접수된 상태다. 이 개정안은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피해자 등을 신속히 구조해 공동체 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스위스나 프랑스처럼 형법에 구조불이행죄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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