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의 나는 첫째 신문기자라는 사명감에 젖어 있었다.…자는 시간만 제(除)해 놓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쏘다녔다.”
민간 일간지 첫 여기자 최은희(1904∼1984)가 기자 시절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최은희는 남녀평등에 관한 기사를 부지런히 지면에 소개했고, 1945년 광복 후에는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오늘날 뛰어난 활약을 펼친 여기자에게 주는 가장 권위있는 상의 이름은 ‘최은희 여기자상’이다.
최은희 등 시대를 앞서간 여기자 9명의 생애를 조망한 책 ‘한국의 여기자, 1920∼1980’가 발간됐다. 저자인 김은주 연합뉴스 논설위원은 30년 가까이 언론계에서 일한 베테랑 기자다. 각종 기고문, 저서, 논문은 물론 관련 문학서적까지 두루 분석해 선배 여기자들의 삶과 그들이 우리나라 언론에 남긴 족적을 살폈다.
1부 ‘선각 여기자들’은 초창기 여기자들인 이각경(1897∼), 최은희, 허정숙(1902∼991)의 활약을 담았다. 이각경은 최은희, 허정숙에 비해 봉건적 요소를 과감하게 떨쳐내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민간지가 생기기 전 유일한 한글신문이자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공채로 선발된 '여기자 1호'였다.
2부에서는 작가, 문인, 문필가로서의 여기자들을 살펴본다. 주인공은 노천명(1911∼957))과 장덕조(1914∼003)다. 1930년대부터 기자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여성해방이나 여성운동보다는 문학에 도움이 될만한 직업으로 기자직을 택했다. 이들 가운데 장덕조는 훗날 6·25 전쟁 당시 여성 종군기자로 맹활약했다.
3부 ‘전후 부흥기 여기자들’은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여러 영역을 개척한 정충량(1916∼1991), 정광모(1929∼2013), 이영희(1931∼), 권영자(1936∼)를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산업화 시기로 접어들면서 여기자들의 활동 분야도 다양해졌다. 정충량은 여성 논설위원으로 필력을 과시했고, 정광모는 당시로는 드물게 정치부 여기자로 청와대 출입을 하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취재했다.
동화작가로 유명한 이영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어린이신문 ‘소년한국일보’의 창간 멤버였으며 나중에 고대사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권영자는 유신 시절 ‘언론 자유’를 외치며 해직된 뒤 자유언론 투쟁의 선봉에 섰다. 저자의 말이다. “한 분 한 분의 일생이 각자의 평전을 써도 될 만큼 극적이고 감동적이었다. 험난한 시대를 살아내고 온몸을 다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소임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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