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
북한 정권 세습 통렬히 비판
최씨 "지금은 열애 중" 핵심 주제 '사랑'을 읊다

“그동안 1980년대에 관한 글은 아예 쓰지 않았습니다. 80년대라는 말만 들어도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와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백기완 민중후보 캠프에서 뛰며 못 볼 것을 참 많이 봤거든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1987년부터 느껴 온 (진보 진영의) 문제점이 결국 드러났구나’라고 생각했죠.”
최씨가 최근 펴낸 다섯 번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실천문학사)은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3대 세습을 통렬히 비판한 작품으로 출간과 동시에 화제가 됐다.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험악한 때 시인이 북한의 ‘타격’ 목표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다.
“할아버지도 돼지./ 아버지도 돼지./ 손자도 돼지.// 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 꽃 속에 파묻힌 아버지를 보며/ 꼬마 돼지가 눈물을 흘린다/ 돼지가 울자/ 농장의 모든 동물들이 통곡한다.”(‘돼지의 죽음’ 중에서)
최씨는 북한 정권을 풍자할 목적으로 쓴 시임을 선선히 인정했다. 그는 “김정일이 사망하던 날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며 “사망 뉴스를 같이 본 뒤 어머니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한 농담이 그대로 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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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기자들과 만난 최영미 시인은 “그동안 일부러 다루지 않았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새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며 “80년대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아닌 나 개인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
“나의 저녁이 너의 저녁과 합해져/ 너의 욕망이 나의 밤을 뒤흔들고// 뜨거움이 차가움을 밀어내고/ 나란히 누운, 우리는// 같이 있으면 잠을 못 자./ 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연인’ 중에서)
불면증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시인의 말을 빌리면 “나를 가장 잘 표현한 시”다. 마침 시인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연애를 하면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 푸념하는 최씨를 보니 딱 봄처녀 같다. 서른에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한 시인은 쉰 넘어 새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글·사진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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