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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블루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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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05 21:36:04 수정 : 2012-04-05 21: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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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습한 장면과 회고적 음악의 낯선 화학작용 할리우드의 이단아 데이비드 린치는 1986년 작 ‘블루벨벳(Blue Velvet)’을 통해 미국 현대사의 일상 뒤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악몽에 본격적으로 집중했다. 선명하고 강렬한 린치 스타일의 어떤 원점과도 같았던 본 작은 기괴함에도 나름 대중적인 요소들을 훌륭히 융합해내면서 괜찮은 흥행성적을 거둔다. 1950년대를 연상시키는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 잠복해 있는 욕망과 폭력의 소용돌이는 전통적 하드보일드, 필름 누와르의 수법에 준거한 채 아름다움 속의 어떤 어두운 치부처럼 들춰내졌다. 불법침입이나 관음증, 무엇보다 일련의 성적 학대와 도착적 행위는 공개 당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극단적 성격의 성도착자 프랭크 부스를 연기한 데니스 호퍼는 실제로 약을 끊고 재활 이후 처음으로 출연했던 작품이었던지라 무엇보다 생생한 연기를 펼쳤다.

아버지의 입원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에 돌아온 제프리는 들판에서 잘린 귀를 발견하면서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한 채 수수께끼를 쫓기 시작한다. 이 ‘귀’는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로 통하는 어떤 입구였으며, 또한 초대장이었다. 마을 형사의 말을 엿들은 제프리는 형사의 딸 샌디와 함께 클럽가수 도로시 밸런스가 이 사건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집으로 잠입한다. 아이와 어른, 순수와 타락,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제프리는 혼선을 겪는다.

비참하고 음습한 장면과 낯선 화학작용을 이뤄내는 회고적 음악은 일종의 농담처럼 다가온다.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클럽에서 부르는 바비 빈튼의 ‘블루벨벳’, 그리고 응접실에서 벤이 공업용 램프를 마이크 삼아 립싱크한 로이 오비슨의 ‘인 드림스’가 흐를 무렵, 극악무도한 악당 프랭크 부스는 매번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흐느꼈다. 이는 잔인한 인물의 순수한 이면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충실한 어떤 괴물의 묘사처럼 인식됐다. 사운드트랙에 케티 레스터의 버전이 삽입된 아름다운 곡 ‘러브레터’는 가사가 프랭크 부스의 대사로 인용되기도 한다. 분명 이 오래된 노래들에서는 어떤 과거로의 회귀욕구가 존재했다.

이후 꾸준히 함께 작업을 이어가는 작곡가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처음 함께한 이 작품에서 데이비드 린치는 그에게 쇼스타코비치나 러시아 스타일의 악곡, 그리고 아름답지만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를 요구했다. 후에 ‘트윈픽스’에서도 함께하는 줄리 크루즈의 순수한 목소리로 구성된 영화의 엔딩 곡 ‘미스터리 오브 러브’는 데이비드 린치가 직접 가사를 작성한 곡이기도 하다. 이상한 탐미를 지닌 음악들은 기묘한 색채 속에 전개되는 이 부조리한 러브스토리와 효과적으로 맞물렸고, 아무튼 이때부터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곡들은 린치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붉은 장미, 흰 담장, 그리고 푸른 하늘 같은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미국의 한가로운 시골마을 속의 부패라는 테마는 린치의 TV시리즈 ‘트윈픽스’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린치만이 가능한 분위기가 잊을 수 없는 영상, 그리고 음악과 함께 무겁게 퍼져나갔다. ‘광기’라는 감각이 우리의 일상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인지하게 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대사처럼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라는 것은 가끔씩 너무 낯설기만 하다.

한상철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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