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인데도 스토우청은 원래 이렇게 덥니?”
“네, 여긴 여름이 길고 겨울은 아주 짧아요. 4월이면 벌써 39도에 육박하는 한여름인걸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래위 내복에 폴라에 내피를 낀 트레킹점퍼까지 완전무장을 했으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반면 이기사의 부탁으로 내게 길을 안내해주는 남학생은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다. 그나마도 더운지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진사강 협곡의 첩첩산중에 위치했으니까 리장보다 춥겠지 했던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겨울의 길목에서 지난여름으로 회귀했다. 살갗을 태울 듯이 햇살이 쨍쨍하게 내리비춘다.

“얘, 여기에는 나시족만 산다면서?”
“네, 여기 서쪽 산자락에 116가구, 스토우청에 108가구, 전부 합쳐서 900여 명쯤 살고 있는데 모두 다 나시족이에요.”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여행 온 기분이랄까. 하나의 민족이 공동체를 이룬 마을이라니 어쩐지 신기하다. 신석기 부족사회에 뚝 떨어진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마을 어귀서부터 돌계단을 따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길 30여분. 비로소 마을의 실체가 드러났다. 중세시대의 성(城)처럼 투박하지만 자태가 제법 늠름하다. ‘스토우청(石頭城)’이라 쓴 큰 대리석비가 눈에 띈다. 그 뒤로 돌계단이 몇 개 이어지더니,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역시 돌로 만든 육중한 성문(城門)이 턱하니 버티고 서있다. 그 성문이 마을회관이라도 되는 듯, 나시족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계신다. 등산배낭을 메고 계단을 오르는 나를 모두 뚫어져라 유심히 쳐다보신다. 그 눈빛이 ‘이런 깡촌에 뭐 볼게 있다고 애써 찾아왔누?’ 하는 것 같다. 마침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목씨의 부인이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환하게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잡히는 주름이 아주 순박해 보인다. 선해 보인다.
그녀를 따라서 오솔길처럼 폭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전설처럼 전해들은 신비로운 마을 풍경이 현실로 펼쳐진다. 사람이나 가축이 기암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담길이 이어진다. 바깥세상의 동태가 궁금했는지,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창문을 큼직하게 뚫어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바닥에는 인위적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들이 열 맞춰 깔려 있다. 이 많은 돌들을 어디서 운반해왔을까.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아귀를 맞춰 깔고 쌓은 돌마다에서 옛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세월 따라 마모되어 윤기가 흐르는 돌들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대변한다.

게스트하우스는 성문에서 가까웠다. Mu’s Family G.H. 목가객잔(木家客棧)이라 쓴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나무판자에 한 자 한 자 손수 새긴 소박한 간판이 정겹다. 무엇보다 목씨 가족의 살림집과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가 한 공간에 있어 좋다. 단 며칠이지만 나시족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을 테니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골목의 예스러움이 집안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거다. ㄷ자 모양의 2층 가옥은 시멘트로 지은 현대식. 깔끔한 부엌, 수세식 화장실과 태양열을 이용한 공동 샤워장이 목씨 아저씨와 부인의 자랑거리란다.
그러면서 이 집의 진정한 보물은 2층의 테라스라며, 스토우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단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입에서 “우와~!” 탄성이 흘러나왔다. 높은 산맥이 굽이쳐 흐르는 가운데로 새하얀 햇살이 후광처럼 빛난다. 그 사이를 가느다란 진사강이 뱀처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른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인간이 피땀으로 일군 다랭이 논밭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우두커니 앉아서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노라니 어느새 해질녘.
저녁이 되자 게스트하우스는 프랑스에서 온 10여 명의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2박 3일에 걸쳐 35km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고 따쥐(大具)에서 차를 타고 왔단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나귀가 싣고 온 짐의 양이 엄청나다. 2박 3일 호도협 트레킹이 아니라, 9박 10일 안나푸르나 ABC 트레킹을 온 것 같다. 곳간 채워지는 소리에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목씨의 부인. 스토우청에서 루구호까지 트레킹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며, 그 선두에는 프랑스인들이 있고, 스토우청에서 그 길을 개척한 인물이 바로 남편 목씨라며 아주 뿌듯해한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인들은 오래전부터 걷기를 ‘인간이 몸으로 깨닫는 철학’으로 여기는 것 같다. <걷는 행복>에서 걷기에는 인생이 들어 있고, 깨달음이 있으며, 신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 있다던 이브 파칼레나, <걷기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했던 다비드 르 브르통이나, 모두 프랑스인이다. 그뿐인가. 12,000km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두 발로 걸어서 여행한 베르나르 올리비에 역시 프랑스인이다. 그는 아예 대놓고 “걸어라, 걸으면서 자신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참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주문을 걸었다. 나 역시 이들의 영향을 무지 받았다. 그래서 지금 110km 트레킹의 베이스캠프에 와 있지 않나!
저녁을 먹고 2층 테라스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프랑스인들. 이 도보여행자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도 밤 10시가 되니 고요해졌다. 어느새 산속의 정적이 마당 안으로 파고들었다. 곧 스토우청 전체가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기나긴 밤.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보지만 나 홀로 잠 못 들고 있다. 시계는 째깍째깍, 벌써 새벽 1시를 가리키는데….
“내 저놈들을 당장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여자처럼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러자 바깥의 저놈들이 나보다 더 요란하게 히스테리를 부린다. 범인은 마당 한구석 좁고 어두운 광주리에 갇혀 사는 목씨네 수탉과 암탉들. 내일 저녁에는 놈들의 주리를 틀어 바비큐 파티를 열던지 원. 아, 괴로워죽겠다.
여행작가 고승희(blog.naver.com/koaram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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