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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몽골 ‘어워’를 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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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15 01:02:53 수정 : 2011-10-15 01: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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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신앙 정령지키는 ‘성황당’
종교 따지지 않는 공존의 공간
몽골에서 생활하면서 발견한 사실 중 하나는 몽골인의 일상에 신앙이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심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것을 경건하게 받드는 이가 많다는 사실이 내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혹독하게 춥고 긴 겨울과 짧고 무더운 여름, 농경이 불가능한 황무지가 태반인 땅, 이렇듯 인간이 정착해 살기 어려운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신의 존재에 더욱 의지하게 됐던 것일까.

김미월 소설가
어쨌거나 그간 나는 몽골인의 신심이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지를 목도해 왔다. 인사말이나 음식 이름 등 생활회화에 널리 쓰이는 단어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먼저 배운 몽골어가 ‘어워(ovoo)’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한 성격을 띠는 그것은 돌무더기 꼭대기에 색색의 헝겊으로 감싼 나무를 꽂아 놓은 일종의 제단이다. 내가 그 이름을 가장 먼저 익히게 된 까닭은 그것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인의 절대 다수가 여전히 라마교를 믿고 최근 들어 개신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해 가고 있지만, 몽골에 외래 종교가 유입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샤머니즘은 오늘날에도 건재해서 야트막한 언덕이나 높은 산 정상이나 드넓은 평야 혹은 사람이 다니는 길가 등 어디에나 어워가 있다. 몽골인은 어워에 그 지역의 땅과 주민을 보호해 주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주위를 돌면서 돌을 던지고, 보드카나 우유를 뿌리고, 돈이나 사탕을 올려놓고 소원을 빈다.

나의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규모가 꽤 큰 어워가 있다. 며칠 전 몽골인 친구와 함께 그 근처를 지나다가 마음이 동해 어워가 있는 언덕에 올랐다. 정상에 이르자 마침 두 사람이 어워를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리가 기역으로 꺾인 모습이 칠십은 족히 넘었을 할머니와 많아야 스무 살쯤 됐을까 싶은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워를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그 청년과 안면이 있는지 갑자기 그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할머니와 청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할머니의 모아 쥔 두 손바닥 사이에 염주가 걸려 있고, 청년의 목에서는 십자가 목걸이가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나는 늙은 라마교 신자와 젊은 개신교 신자가 나란히 샤머니즘의 제단에 고개 숙인 낯설고도 드문 풍경을 보고 있는 셈이었다.

청년이 할머니를 부축해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친구는 내게 그들이 조모와 손자 사이로 매일 이 어워에 와서 기도를 드린다고 일러주었다. 청년의 어머니가 큰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종교가 다른데도 그들은 똑같이 어워의 정령을 믿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할머니는 내 며느리가 이 신을 사랑하고 이 신이 내 며느리를 사랑한다고, 청년은 내 어머니가 이 신을 사랑하고 이 신이 내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했단다. 지금처럼 앓아눕기 전에는 청년의 어머니가 매일 이 어워에 와서 가족의 행복을 빌었다는 것이다. 청년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내 친구는 그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어워를 돌기 시작했다.

친구를 따라 어워를 돌면서 나는 문득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한 연예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미 타계한 다른 종교인을 폄훼하는 글을 올려 인터넷에서 설전이 오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믿는 참된 종교의 상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종교관으로는 내가 그날 어워에서 본 그 가슴 서늘하게 아름답던 풍경을 결코 상상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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