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결은 '꾸준함'· 팬과 친밀도를 높인 노출 전략

아역 출신 배우들의 종횡무진이 눈길을 끈다. MBC ‘계백’의 아역 4인방 이현우 박은빈 한보배 노영학은 어릴 때부터 연기해온 내공을 바탕으로 ‘명품 아역’임을 인지시켰다. 심은경, 김새론은 브라운관뿐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성인배우 못지 않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아역으로 정평 나있다. 문근영, 장근석, 김민정, 박신혜는 ‘아역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해진 지 오래. 이들은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다.
대중에게 얼굴을 일찍 알린 아역배우는 인지도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아역으로 쌓은 인지도가 성인 연기자로 이행하는 데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성장하는 과도기에 놓인 배우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배우가 유승호다.
2002년 영화 ‘집으로’에서 철부지 꼬마로 사랑받았던 유승호가 최근 폭풍성장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외적 성장뿐 아니라 내면의 성숙함이 대중을 매료시키고 있다.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 '블라인드'로 관객을 만나는 유승호는 SBS '무사 백동수'에서 살성(殺性)을 타고난 여운 역을 통해 시청자와도 만남을 갖는다.
유승호의 행보가 주목할만한 건 이상적인 성인 연기자로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유승호는 ‘무사 백동수’에서 귀엽고 앳된 아역의 이미지가 아닌 성숙한 남성미를 발산한다.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유승호의 새로운 면모이자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했음을 시청자 앞에 선보이는 중요한 시도다.
시청자 평가는 호의적이다. “유승호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했다” “악역도 꽤 어울린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지난 2일 방송된 ‘무사 백동수’는 동시간대 타방송사 야심작 ‘계백’ ‘스파이 명월’과의 경쟁에서 전국 시청률 17.4%(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며 월화드라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 수치상으로도 만족스런 결과물을 얻었다.
‘국민남동생’ ‘리틀 소지섭’ 등 착하고 순한 훈남 이미지가 지배적인 유승호가 과연 복잡다단한 여운의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방송 초반 우려의 시선이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본격적인 성인 연기, 그것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악역에 도전한다는 것은 유승호에 대한 대중의 정서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성인연기자로 거듭나기 위해 한번은 거쳐야 할 시행착오였지만 그만큼 위험을 동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변화에 실패할 경우 아역도 성인도 아닌 모호한 입장에 처할 수 있었고, 선역만 소화할 수 있는 제약을 지닌 배우에 머무를 수 있었다.
유승호는 서두르지 않는 영민함으로 성인 연기자로의 과도기를 맞고 있다. 여심을 흔드는 미소,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남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성인 연기자가 되기 위한 계단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학원물 ‘공부의 신’에서 자기 나이 대 캐릭터인 방황하는 문제아를 연기했는가 하면 ‘욕망의 불꽃’에서는 서우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는 성장통을 겪었다. ‘무사 백동수’에서는 태생의 상처, 복수라는 삶의 동기로 집약된 여운 캐릭터로 남성적 카리스마를 드러내고 있다.
유승호는 한번에 성인의 모습을 각인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무사 백동수’에서 여운의 눈빛에는 강인함 속에 소년의 우수도 언뜻 내비친다. 그는 여운이 악인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연기하며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납득시킨다.
유승호가 작품 활동을 해오는 동안 항상 칭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쟁쟁한 선배 연기자 틈에서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쓴소리를 들었고, 변성기 목소리가 극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 감정표현의 미숙함을 지적 받기도 했다. 하지만 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차츰 시청자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아역’의 이미지는 떨쳐졌다.
최근 방송에서 여운은 사도세자(오만석 분)와 검선 김광택(전광렬 분)을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짐작하고 피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고 절규했다. 향후 여운의 심정적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지금까지 전개된 내용으로 미루어 여운은 정조 비밀 암살조직인 흑사초롱의 일원으로 점차 살수 본능을 드러내며 검객 백동수와 대결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유승호가 ‘무사 백동수’를 통해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인 발돋움을 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의 소지가 적어 보인다. 이는 어느 한편으로는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친밀도를 높인 결과다.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 없이 성장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팬들에게 노출한 전략이 통한 까닭이다.
/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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