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 중에선 정조의 담배 사랑이 유별났다. 이런 글을 남겼다. “여러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담배)만 한 것이 없다.” 신하들은 금연령 선포를 건의했다. 당시 곡식을 심어야 할 밭에 너도나도 담배를 심는 바람에 폐해가 컸던 탓이다. 정조는 선포를 거부했다. 이 바람에 한동안 마찰이 이어졌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한반도에 전파된 담배는 신령스러운 약초로 인식되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17세기 중엽 조선에서 억류생활을 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은 “어린아이들까지 네댓 살만 되면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자식에게 담배 피우는 요령을 가르치는 부모도 없지 않았다.
담배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풍파를 일으켰다. 러시아에선 금연법을 어기면 코를 베고, 오스만 제국은 적발 즉시 목을 베었다. 이런 극형에도 담배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담뱃값만 치솟게 하는 부작용만 낳다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담배와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호주가 담뱃갑의 색상을 ‘비호감’ 황록색으로 바꾼 데 이어 미국에선 담뱃갑에 오싹한 경고 사진을 넣는 극약처방이 나올 모양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시신 사진, 흡연자의 망가진 폐 등 9종의 사진을 선정했다. 시신 사진 밑에는 ‘흡연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문구가 새겨진다. 내년 가을까지 모든 담뱃갑 앞뒤 면에 이런 섬뜩한 내용들이 실린다는 것이다.
‘흡연공화국’ 대한민국에 이런 충격요법은 아직 먼 나라 얘기인 듯싶다. 담뱃갑에 경고성 그림을 넣게 하자는 법안은 3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태평양 저편의 날갯짓이 한국의 담배시장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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