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김제에 금(金)과 관련한 지명이 많고, 비옥한 들판에서 나온 풍부한 농산물 덕에 충분히 '돈(錢)의 고장'으로 불릴 만하다는 주장이 나와 흥미롭다.
11일 김제문화원과 주민에 따르면 김제는 예부터 '금의 고장'으로 불린다. 김제(金堤)라는 지명이 '금(金)이 둑(堤)을 이룬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할 정도로 금이 많았던 곳이다.
현재까지도 지역에는 금산(金山.금이 산을 이룬 땅), 금구(金溝. 금이 흐르는 냇가), 금평(금이 평야를 이룬 곳)저수지 등의 지명과 아울러 모악산 인근에 금(金)자가 섞인 마을 이름도 많이 쓰인다.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에 김제 특히 모악산과 인근 꼬깔봉우리에서 상당량의 금은 채굴했고 산 아래 들녘에서는 전국의 70%에 이르는 사금(沙金.모래에 섞인 금)이 생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제문화원 정주현 원장은 "일본인들이 모악산 봉우리인 꼬깔봉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캐갔는데 채굴장 깊이가 산 밑 200m까지 이르렀다"며 "그 채굴 흔적이 금구면 양성마을 주변에 남은 '냉굴'과 '냉천'이고 마을에는 당시 금 채굴상과 인부들이 살던 집이 여러 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그때 캐다가 냇물을 따라 모래와 섞여 지대가 낮은 평야지대로 흘러간 금 부스러기가 바로 사금이다. 일제 후에는 봉남과 황산 일대에서 사금 채취가 활발해 '벼락부자'가 많이 나왔다"면서 "채취는 불과 15년 전까지 이뤄진 뒤 중단됐다가 최근 금값이 오르면서 봉남들판에 업자들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처남의 돈 110억원을 마늘밭에 숨겼다 들통난 이모(53)씨의 마늘밭도 일제강점기 금 채굴지인 금구면 꼬깔봉우리에서 불과 3-4km 아래에 있어 김제 금구가 '쩐(錢)의 마을'로 불명예를 얻었다.
금구면 조모(46)씨는 "금구가 사금이 많고 농사가 잘돼 돈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같은 불미스런 돈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돼버려 기분이 별로다"며 앞으로 좋은 일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김제시민은 "일제시대에 '금의 화수분'이었던 김제 금구가 검은 돈다발이 쏟아지는 '마늘밭 화수분'이 돼 버렸다"고 자조섞인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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