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어필 고유 브랜드 갖춰야 HQ.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이니셜이다. 홈페이지는 HQ를 High Quality(하이 퀄리티)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질 높은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보인다. 정치의 질을 높이자고 말하는 이가 야당 대표가 됐다. 민주당은 달라지고 한국정치는 발전할 것인가.
손 대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다. 당연히 진보의 길을 추구할 것이다. 그렇다고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중도세력을 포용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를 따로 보지 않고 통합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교육이슈를 두고 복지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경쟁과 복지개념에서 같이 들여다보자는 식이다. 이처럼 야당이 모든 문제에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렇더라도 단세포적인 반응을 줄여나가야 질 높은 정치가 실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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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 논설위원 |
손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받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취임일성으로 “쌀 지원을 거부하면서 민족을 말할 수 있나”라고 정부를 비판한 것은 유지 계승 차원에서 이해된다. 인도주의와 평화유지 측면에서 진보적 접근을 말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보가 연관될 때는 달라져야 한다. 민주당은 북의 천안함 도발에 귀를 막았다. 종북주의를 탈피하지 않고 수권 정당이 되기는 어렵다. 북의 3대 세습체제 가동으로 동북아 긴장은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각축전이 심상치 않다. 이런 지정학적 격변기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지도력이 절실해진다. 북한과 주변 강대국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현실인식을 갖춰야 한다. 친북적인 스탠스가 민주당의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당내외 세력과는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한다.
손 대표는 취임사에서 “2012년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 정권과 싸우겠다”고 했다. 전당대회 결과를 ‘국민과 당원이 정권교체를 하라는 지엄한 명령을 주신 것’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을 대선주자의 반열에 놓은 것이다. 손 대표는 18대 총선 패배 후 2년 3개월이라는 세월을 농촌에서 칩거했다. 다른 정치인처럼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서 한국의 현실과 마주하며 와신상담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민주당 대표가 된 것도 이 같은 진정성을 평가받은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대권주자가 되려면 그 이상의 스토리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손학규는 한때 기자들과 보좌관들, 여론주도 세력에서는 차기 대통령감 1위였다. 그럼에도 국민 지지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대정신에 맞는 브랜드가 없어서다. 노무현은 ‘권위주의 타파와 지역대결 구도 해소’, 이명박은 ‘경제살리기와 선진사회 진입’을 비전으로 내세워 대권을 거머쥐었다. 미국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한 데 이어 흑인 오바마는 “YES WE CAN”이라며 인종통합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워 민심을 움직였다. 손 대표가 명실상부한 대권주자가 되려면 이 같은 비전과 호소력이 필요하다. 공식적인 당 선출절차에 들어가기 전 국민 ‘인증샷’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다.
로마 시대 리더십서 가장 앞 순위는 지성이다. 이어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 의지 순으로 리더십이 완성된다. 결단력 실행력 열정 등은 중요하지만 지도자에게 그런 덕목은 기본이다. 손 대표는 학력과 성품, 경력에서 보듯 지성적이다. 손 대표의 성공은 리더십의 두 번째 요소인 설득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의 장점이자 진보적 가치인 ‘친서민’과 ‘공정한 사회’는 이명박 정부가 다 써먹었다. 손 대표는 국민에게 어필하고 민심의 공감을 얻기 위해 어떤 비전과 가치를 내세울 것인가. 손 대표의 카드에 본인과 민주당의 장래가 걸렸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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