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릴 무렵 전남 무안에 다녀왔다. 무안은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서울에서 시작하는 1번 국도와 서해안고속도로가 제 역할을 다할 즈음 무안이 나타났다. 무안은 생명의 보고이다. 220㎞나 되는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배경으로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면적만 3만5600㎡가 넘는다. 무안의 갯벌은 2001년 전국 최초로 연안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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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은 살아 있다.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해안가를 오갈 때에도 갯벌은 생명체의 보금자리로 그 역할을 다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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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갯길이 제법 알려지면 많은 여행자가 이 길을 찾을 것이다. 아직은 한적한 길을 연인과 함께 힘들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
조금나루에서 시작하는 해안길을 ‘무안 갯길’로 알리고 싶다는 공무원을 만났다. 그가 제안하는 갯길은 8㎞ 정도다. 어른 발걸음으로 2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일부 구간을 걸으면서도 힘겨움이 앞섰다. 무안 갯길이라니. 제주의 올레나 지리산의 둘레길처럼 나무도 많고 경치도 좋은 도보 여행길이 제격이지, 갯길은 어쩐지 오랜 시간 걷기에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늘도 별로 없는 곳에서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며 걷는 것은 고역이지 싶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어느 순간이었다. 갯벌에서 삶을 이어가는 어민들을 본 순간이었다. 무안 출장에서 돌아온 뒤 갯길 걷기 예찬은 더 진해졌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는 마음은 맑아지겠지만, 갯길 걷기도 그에 버금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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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 지주 사이로 낙지 잡기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작은 배를 타고 썰물로 드러난 섬에서 낙지를 잡는 흔치 않은 체험은 몸과 마음에 그 추억이 오롯이 간직된다. |
사실 어민들은 갯벌에 잘 안 빠진다. 그들이 갯벌을 걷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갯벌에 살짝 발만 올려놓고, 이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인다. 갯벌에서 보는 ‘낮은 높이의 공중부양’이라고나 할까. 그래서다.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들어가지는 못할지언정, 그 주변을 걷기조차 못할까. 갯길 걷기는 단순한 추억 이상의 것을 잉태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진다.
갯길을 걸었으니, 직접 어민들의 손놀림을 보고 싶었다. 어촌 체험마을로 이름난 송계마을로 들어섰다. 한나절을 기다렸다. 갯벌체험은 썰물 때나 가능해서이다. 썰물에 맞춰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20분 정도 바다의 물살을 헤치니 갯벌이 보인다. 지주식 김발이 군데군데 열병하는 군인처럼 갯벌에 펼쳐져 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지주식 김발은 겨울에 김을 채취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색깔을 입히고 코팅해 원래의 푸른 색을 더한 대나무 지주가 갯벌과 잘 어울렸다.
체험에 나선 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곳이 보였다. 송계마을 어민 박상범씨 등이 연이어 낙지를 잡아올리자 덩달아 신이 나는 듯했다. 어민들은 귀신처럼 낙지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갯벌의 조그마한 공간이 회색 빛깔을 보이면 이들은 이내 삽질을 했다. 회색 빛깔은 주위와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다. 삽질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낙지들이 예약이나 된 듯 들려 나왔다.

무안=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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