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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15 17:25:56 수정 : 2010-07-15 17: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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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보고’ 갯벌은 살아있다
장맛비가 내릴 무렵 전남 무안에 다녀왔다. 무안은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서울에서 시작하는 1번 국도와 서해안고속도로가 제 역할을 다할 즈음 무안이 나타났다. 무안은 생명의 보고이다. 220㎞나 되는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배경으로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면적만 3만5600㎡가 넘는다. 무안의 갯벌은 2001년 전국 최초로 연안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고, 2008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갯벌은 살아 있다. 밀물과 썰물이 번갈아 해안가를 오갈 때에도 갯벌은 생명체의 보금자리로 그 역할을 다한다.
무안에서 만난 주민은 “갯벌은 누군가의 집”이라고 표현했다. 시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육지의 구멍과 달리 갯벌의 구멍은 어느 생명체에게는 집이 된다. 무안갯벌은 더구나 유년기 갯벌이다. 갯벌의 생성과 소멸이 동시에 관찰되는 땅이다. 바다에 머물러 사는 특성을 보이는 무척추 동물이 208종이나 서식하고 있다. 국내 어느 갯벌보다 생명체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먹이생물이 풍부해 각종 조류에게는 훌륭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무안 갯길이 제법 알려지면 많은 여행자가 이 길을 찾을 것이다. 아직은 한적한 길을 연인과 함께 힘들게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갯벌을 본격 탐험하기에 앞서 망운면 송현리의 조금나루 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조금나루에서 북쪽 곰솔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4㎞가 넘는 긴 백사장에 간헐적으로 해송(海松)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인생의 지도를 그렸다가 지우기도 했을 것이고, 어느 여행자는 이곳에서 느린 걸음으로 삶을 관조했을 것이다.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자들의 생각은 여러 갈래이겠지만, 이곳 산낙지의 간질간질한 유혹을 벗어던질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범하고 큰 것에는 흔들리지 않더라도, 작은 것에는 쉽게 흔들리는 게 인생이다.

조금나루에서 시작하는 해안길을 ‘무안 갯길’로 알리고 싶다는 공무원을 만났다. 그가 제안하는 갯길은 8㎞ 정도다. 어른 발걸음으로 2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일부 구간을 걸으면서도 힘겨움이 앞섰다. 무안 갯길이라니. 제주의 올레나 지리산의 둘레길처럼 나무도 많고 경치도 좋은 도보 여행길이 제격이지, 갯길은 어쩐지 오랜 시간 걷기에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늘도 별로 없는 곳에서 바다와 갯벌을 바라보며 걷는 것은 고역이지 싶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어느 순간이었다. 갯벌에서 삶을 이어가는 어민들을 본 순간이었다. 무안 출장에서 돌아온 뒤 갯길 걷기 예찬은 더 진해졌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는 마음은 맑아지겠지만, 갯길 걷기도 그에 버금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김발 지주 사이로 낙지 잡기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작은 배를 타고 썰물로 드러난 섬에서 낙지를 잡는 흔치 않은 체험은 몸과 마음에 그 추억이 오롯이 간직된다.
발이 갯벌에 빠지면 어떤가. 어차피 생명과 여유를 느끼려고 찾은 곳이 아닌가. 다만 조심할 게 있다면 바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면 갯벌에 있는 숱한 생명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갯벌에는 눈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구멍이 있고, 구멍과 그 주변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다. ‘갯벌은 살아 있다’는 표현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 구멍에 산소가 공급되고, 생명체는 숨을 쉰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이 결코 썩지 않는 이유다. 생명체의 보고 갯벌은 어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어민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며 자식을 키웠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도, 여인들이 살아온 이유에는 갯벌도 있다고 한다.

사실 어민들은 갯벌에 잘 안 빠진다. 그들이 갯벌을 걷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갯벌에 살짝 발만 올려놓고, 이내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보인다. 갯벌에서 보는 ‘낮은 높이의 공중부양’이라고나 할까. 그래서다. 삶의 치열한 현장으로 들어가지는 못할지언정, 그 주변을 걷기조차 못할까. 갯길 걷기는 단순한 추억 이상의 것을 잉태한다고 강조하고 싶어진다.

갯길을 걸었으니, 직접 어민들의 손놀림을 보고 싶었다. 어촌 체험마을로 이름난 송계마을로 들어섰다. 한나절을 기다렸다. 갯벌체험은 썰물 때나 가능해서이다. 썰물에 맞춰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20분 정도 바다의 물살을 헤치니 갯벌이 보인다. 지주식 김발이 군데군데 열병하는 군인처럼 갯벌에 펼쳐져 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지주식 김발은 겨울에 김을 채취하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색깔을 입히고 코팅해 원래의 푸른 색을 더한 대나무 지주가 갯벌과 잘 어울렸다.

체험에 나선 이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곳이 보였다. 송계마을 어민 박상범씨 등이 연이어 낙지를 잡아올리자 덩달아 신이 나는 듯했다. 어민들은 귀신처럼 낙지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갯벌의 조그마한 공간이 회색 빛깔을 보이면 이들은 이내 삽질을 했다. 회색 빛깔은 주위와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다. 삽질을 할 때마다 크고 작은 낙지들이 예약이나 된 듯 들려 나왔다.

갯벌체험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아이는 조개를 잡고, 어른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무안이다. 무안은 올해도 어김없이 일로읍 복용리 회산백련지 일원에서 ‘무안 대한민국연산업축제’를 연다. 축제는 다음달 5일부터 8일까지 이어진다. 무안에서 끊임없이 피고 지는 하얀 연꽃은 검은 갯벌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갯벌이 맨발에 진한 감촉을 선사한다면, 연꽃은 보는 이의 눈에 하얀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갯벌이 바다 생명체의 보고라면, 연꽃은 생명과 평화의 꽃이다. 이래저래 무안은 생명의 땅이다. 지치기 쉬운 여름, 무안이 그리운 이유다.

무안=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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