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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아빠에게 전하는 父性의 편지

입력 : 2009-04-24 21:22:36 수정 : 2009-04-24 2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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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월급봉투 갖다주는 이로 위상 전락
가족 정신적 유대 구심점으로 부성 회복을
오늘날 우리에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이제 한국 사회에서 기러기아빠를 만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화를 따라잡기 위한 영어교육의 열풍과 자식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 낳은 새로운 가족 풍속도인 이 현상은 아버지를 가족과 결속시키기보다는 가족과 결별하게 하고 있다. 아내와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나서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경제적인 부담과 외로움이다.

◇‘아버지와 아들’(프티 포맷 갤러리, 파스칼 로쉐).
아버지란 무엇인가/루이지 조야 지음/이은정 옮김/르네상스/2만원


이로 인해 신문에는 심심치 않게 가장의 자살이나 기타 사건들이 보고된다. 자식의 장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이런 아버지들의 모습은 물론 숭고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방향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아버지의 부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일까?

‘아버지란 무엇인가’는 진정한 부성의 의미와 역할을 깊이 있게 탐구한 보기 드문 저서이다. 지금까지 부모에 대한 관심은 주로 어머니에게만 집중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식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강조하는 모성만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 아버지는 오직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 즉 가정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으로만 치부된다. 그러나 저자는 아버지에게 드리워진 이런 편견을 비판하면서 아버지의 진정한 역할은 다른 데 있다고 말한다.

국제분석심리학회 회장이자 뉴욕에서 활발한 심리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문명의 진화와 부성의 탄생이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라는 사람의 출현은 단순한 생물학적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동물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문명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신체적인 우월성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결속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정신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구심점이었고 이렇게 묶여진 결속력을 사회로 연결시켜주는 사람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양자가 아니라 자식을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도와주고 직업교육을 하는 교육자였다. 아버지의 일터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공개되어 있었고, 일을 끝낸 밤이면 가족은 화톳불에 모여앉아 아버지가 들려주는 조상 이야기와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루이지 조야 지음/이은정 옮김/르네상스/2만원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둘러싸인 현대사회에서 아버지는 교육자라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역할을 제도교육에 빼앗긴 채 가족으로부터 퇴출당하고 있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고 세계화 추세가 강화되면서 이제 아버지들이 가진 지식은 낡은 것이 되어버렸고, 그의 직업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아버지들에게 남겨진 역할은 자식의 미래를 다른 기관에 위탁하면서 가족에게 월급봉투를 가져오는 사람, 즉 생계 부양자로 전락하고 있다.

문제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인류문명을 진보시켜온 사회의 정신적인 기능도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자격이 출산과 관련된 생물학적 사실로 축소되면서 발생하는 가장 큰 사회문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학교나 집에서나 자신을 이해해줄 따듯한 시선을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아버지의 결핍감을 폭력적인 행동으로 보상하려 든다. 또한 아버지들 역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상실한 채 가족의 품을 벗어나 도박과 술 중독으로 도망치고 있다.

저자는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아버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버지는 역사 속에서 항상 사회의 모든 책임과 잘못을 짊어져 왔던 역사의 당나귀였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서 개인적인 충동을 억눌러 왔으며, 자식을 위해서 적 앞에서 무릎을 꿇어 왔다. 이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과 자식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어머니와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다시 부성을 되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사회가 먼저 아버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버지를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은 비단 한 가정의 행복만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선물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은정 번역가·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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