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다와
이곳은 수도 델리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길목에 있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다. 수많은 무역상의 거점 또는 경유지로 번성을 누리던 곳이었다. 무굴제국의 세력이 약해지고 경제 발전과 더불어 무역상들의 루트가 바뀌며 이곳도 점차 쇠퇴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혀진 도시였던 이곳이 최근 라자스탄의 여행명소로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만다와(Mandawa)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셰크바티(Shekhvati) 가문의 하벨리를 방문했다. 저택의 섬세한 조각과 아름다운 벽화들이 시간에 밀려 희미하게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만다와 골목길에서는 라지푸트의 신화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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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지가르 성 옥상에서 여행자에게 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 |
만다와 부근 수라지가르(Surajgarh)성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수라지가르’는 ‘태양의 성(城)’이란 뜻이란다. 빛바랜 건물은 낡아 있었고 호텔 종업원들은 마치 슬로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남쪽으로 난 3층 방문을 열자 오래된 도서관에서 나는 것 같은 묵은 냄새가 코끝으로 먼저 달려왔다.
가구들은 낡아 있었고 문의 손잡이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뒤따라온 지배인이 성주의 딸이 묵었던 방이란다. 방 안의 장식은 공주풍인데 냄새는 노인네 방이다. 붉은색 커튼을 열자 수라지가르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성의 공주가 된 나는 한동안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성을 둘러싼 너른 평원이 이 성을 살찌웠던 것 같았다.
남쪽 평원 끄트머리에 또 다른 성채가 보여 그곳에 가 보았다. 손보지 않은 건물은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 을씨년스러웠다. 수라지가르 하벨리란다. 마당에 낙타 한 마리 묶여 있고 한 여자가 타작한 알곡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낯선 여행자의 방문에 주인인 듯한 남자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내가 묵은 호텔보다 규모는 작지만 옥상 난간의 건축 양식들은 훨씬 더 화려했다. 주인인 남자는 이 성채가 300년 된 건물이라며, 자기 할아버지가 대상(大商)이었다고 한다. 아치형의 옥상 난간 너머로 석양은 지고, 양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커리 냄새가 마을에 퍼져가고, 고성에서의 일몰 풍경은 여행자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 포카란 성곽호텔
자이살메르에서 동쪽으로 109㎞ 남짓 떨어진 포카란(Pokaran)은 라자스탄의 주요 도시인 비카네르, 조드푸르, 자이살메르를 잇는 교역로의 중심에 있던 도시다. 이곳에 포카란 성곽호텔이 있다. 포카란 성은 1458년 라호조다르 동생이 건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의 관리가 어려워지자 후손들은 성을 호텔로 개조해 성의 영화를 재현해 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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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란 성 호텔. |
3층 높이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른쪽으로 힌두 신전이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였다. 성 안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라바람데르’라는 신전에는 흙으로 빚은 작은 신상들이 마치 인형 전시장처럼 모셔져 있었다.
성곽호텔에 묵지 않는 여행자들도 성곽호텔을 보러 왔다. 성의 규모에 비해 호텔 객실 수는 많지 않았다. 총 23개의 방이 있다고 하는데, 사원 아래쪽 건물을 개조해 만든 몇 개의 방만 같을 뿐 방의 크기나 시설이 같은 게 하나도 없단다.
호텔 내부를 둘러보았다. 거실에 걸린 왕족들의 사진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그들은 번성했던 라자스탄의 부와 명예를 잔뜩 뽐내고 있었다. 그 당시의 복장을 한 종업원들과 고풍스런 실내장식들로 이곳에서는 여행자들도 라지푸트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묵을 2층 방은 운좋게도 왕비가 묵던 방이란다. 3층에 있는 왕의 방과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계단만 연결되어 있을 뿐 방은 하나의 독립된 별채였다. 아치형 테라스가 있는 실내정원, 방보다도 더 넓고 화려한 독립된 화장실, 페르시아풍으로 장식된 창문들…. 지난번 묵었던 수라지가르 성과는 비교가 안 되는 호화스런 방이었다. 당신은 운이 좋다며 가방을 들고 온 종업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방을 구경 온 다른 여행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공간에서는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저녁식사 자리는 수영장 부근 야외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투숙객들은 서양 여행자들이었다. 성의 주인 내외가 정장을 하고 아들과 함께 테이블을 돌며 인사했다. 주인의 호텔 자랑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가까운 라자스탄 최고의 성곽도시 ‘자이살메르’에도 이런 성곽호텔이 없다며, 그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이곳에 묵게 하겠다고 했다. 그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 라자스탄을 번성케 했던 라지푸트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성 안 사람들은 꿈나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떤 이는 성주가 되고, 어떤 이는 왕비가 되었다. 이곳 라자스탄에서만큼은….
여행작가

인도 델리를 거쳐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사막 지역이라 무더운 여름은 피하는 게 좋다. 라자스탄 곳곳에는 성이나 하벨리를 개조해 만든 호텔들이 많이 있다. 만다와, 비카네르, 쿰발가르 성 부근, 비자이푸르, 포카란 등이 여행자들이 묵기에 적당하다. 조드푸르에 있는 ‘우메이드 바반 펠리스’ 호텔은 인도 내에서도 손꼽히는 고급호텔이다. 호텔에 방은 많지 않으니 여행사 등을 통해 예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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