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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지휘자’ 쿠렌치스 “나는 시(詩)의 렌즈로 음악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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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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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오케스트라’ 유토피아 첫 내한
쿠렌치스 “공연은 하나의 의례”

클래식 음악 세계에선 시대마다 ‘신데렐라 오케스트라’가 등장한다. 제도의 후광이나 역사의 축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에스트로의 힘으로 지고지순한 영역에 진입한 오케스트라를 뜻한다. 조지 셀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첼리비다케의 뮌헨 필하모닉, 사이먼 래틀의 버밍엄 시티 심포니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당대 신데렐라로 주목받는 악단이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유토피아 오케스트라다. 2022년 창단한 이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연주 이상의 퍼포먼스다. 검은 민소매 차림의 쿠렌치스가 맨팔을 휘두르며 악단을 이끈다. 격정적인 연주 중 현악 주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활을 긋기도 하고 지휘자는 연주자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그렇게 이 악단은 올해 5∼6월 베를린·뮌헨·함부르크·취리히·로마 등 유럽 9개 도시를 돌았고 여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유럽 공연을 지켜본 평단 반응은 찬사와 경계로 갈렸다. 악단의 정교한 합주와 투명한 음향, 폭발적인 에너지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었다. 매진과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한계 체험’이라는 찬사도 나왔다. 반면 극단적인 템포와 강약, 과장된 몸짓이 작품을 조각내고 지휘자의 자기과시로 흐른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그의 유토피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그의 유토피아 오케스트라. 롯데문화재단 제공

이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무대가 서울에서도 펼쳐진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던 쿠렌치스의 첫 한국 공연이 11월 17∼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방한을 앞둔 쿠렌치스는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공연을 정신적 체험을 위한 의례에 비유했다. 그는 “의례 예술과 의례는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다. 음악과 콘서트 역시 하나의 의례”라며 “콘서트에 가는 일은 일상의 일부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와 관련된 일이다. 영혼에는 마음이 열리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공간을 음악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음악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는 시(詩)의 렌즈를 통해 음악을 본다”고 했다.

 

쿠렌치스는 33세였던 2005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나는 클래식 음악을 구할 것이다. 5년이나 10년만 기다려 달라.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20여년 전 발언의 의미를 다시 묻자 그는 “기자 앞에서는 농담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말을 하든 불리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농담이다”라고 받아넘겼다.

 

그러나 이어진 답변에서는 당시 문제의식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며 “정전(正典)으로 굳어진 형식과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진실을 찾아야 하며 진실은 어떤 인위적인 틀에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악보만 기계적으로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음악 텍스트의 진실에 지휘자의 미감과 직관을 결합하는 일이다. 그는 “음악 텍스트에는 그 자체의 진실이 있지만 미감과 직관도 존재한다. 음악은 이 세 가지가 결합해 만들어진다”며 “지휘자는 직관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롯데문화재단 제공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롯데문화재단 제공

스승인 전설적 지휘자 일리야 무신(1903-1999)에게 배운 것도 ‘상상력의 연출가’가 되는 법이었다. 머릿속 음악적 관념을 소리로 구현하고 음표 너머의 이미지를 연주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쿠렌치스는 “이는 일련의 규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음악가의 직관과 본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행을 좇는 해석과도 선을 그었다. 당대 취향을 만족시키는 연주는 곧 잊히지만 지휘자 내면에서 나온 미감은 시대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금세 유행이 지나갈 혁신을 거부한다”며 “보다 금욕적인 탐구에 집중하면서 진정한 혁신을 꿈꾼다. 이 세계의 영적 지향을 포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되는 것과 선각자가 되는 것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쿠렌치스에게 파격적인 무대는 이런 탐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는 의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를 연극적이거나 과시적이라고 여긴다고 반박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정전으로 굳어진 통상적 해석도 누군가의 해석이 특정 시점에 얼어붙은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악보를 펼쳐 그 안에 쓰인 것을 연주하면서 작곡가가 느낀 열정까지 모두 담아내면 청중은 당황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익숙하게 들어온 음악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곡가가 실제로 쓴 음악입니다. 베토벤과 베를리오즈, 말러를 보십시오. 그들의 음악은 감정이 가장자리까지 흘러넘치는 화산과 같습니다. 연주자도 온 영혼과 감정을 쏟아 연주해야 합니다. 그러면 관객도 사로잡힙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 팬에게 쿠렌치스만큼이나 궁금한 것은 유토피아 오케스트라의 실체다. 그는 유토피아를 “친구이자 동료인 약 200명의 음악가로 이뤄진 대가족”이라고 소개했다. “모든 것이 현실적 가치와 효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꿈꾸는 사람들이자 이상주의자들”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는 프로그램과 여러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쿠렌치스는 “특정 공연에 출연한 연주자만 유토피아의 구성원은 아니다”며 “우리와 생각을 공유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모든 친구가 유토피아의 구성원”이라고 했다. 

 

11월 17일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들려준다. 18일에는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뒤 말러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그는 한국 관객에 대해 “매우 재능 있고 섬세하며 예술적으로 진취적이라고 알고 있다”며 “한국 관객과 나의 꿈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관객에게 요구한 것은 침묵보다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봄의 제전’이나 말러 교향곡 1번에서는 관객이 박수를 치고 반응해도 좋습니다. 이 작품들은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키도록 쓰였습니다. 춤이며 움직이는 황홀경입니다. 관객도 그 감정 상태를 함께 경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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