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골프·선교 등 취소 잇따라”
프놈펜 한식당 운영 교민 한숨
현지인 “여기 오는 한인 사기꾼”
범죄 단지 소탕작전에도 냉소적
국경 바리케이드는 열린 채 방치
조직 동남아 포진… 상당수 탈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도심에 자리한 한 한국 식당은 주말 점심시간임에도 한적했다. 한 시간가량 식당을 찾은 손님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이 동네는 한국 식당과 패션, 뷰티 상점이 밀집한 지역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현지인이나 외국인도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식당 매니저 김모(44)씨는 “최근 관광이나 골프를 하는 사람들이 방문을 많이 취소했고 단기선교팀도 안 온다고 들었다”며 “캄보디아가 태국과 분쟁을 벌이는 와중 경기까지 안 좋아 주변국에서도 오는 사람들이 적어진 상황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올 8월 한국인 대학생 박모(22)씨가 범죄단지에서 고문당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20일(현지시간) 교민사회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캄보디아가 위험한 국가로 비치면서 관광객 발길이 끊기고, 현지에서 사업 등을 하며 살아가는 교민들과 현지인 관계가 틀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외교부가 캄보디아 일부 지역을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여행경보를 상향하면서 현지인들 사이에선 “문제를 일으킨 것은 범죄조직에 가담한 중국인과 한국인인데 애먼 캄보디아만 피해를 본다”는 여론도 감지되고 있다.
프놈펜에서 10년째 자영업을 하는 50대 여성 A씨는 국내 언론이 캄보디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 사이에선 ‘캄보디아행 대한항공도 안 뜬다’는 유언비어까지 퍼졌다”며 “교민들은 사는 게 별반 달라진 부분이 없다”고 했다. 또 이 문제는 최근에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민들 사이에선 과거부터 있던 문제를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했다는 불만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캄보디아에선 한국인을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선도 생기고 있었다. 서울 광진구 한 농장에서 10년 가까이 일하고 2년 전 귀국해 택시를 모는 한 기사는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다 착하고 좋았는데, 캄보디아에 오는 한국인들은 다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 현지인들은 이번 사태로 범죄단지 내 실태를 알게 됐다고 했다. 프놈펜 경찰청에서 통역 일을 하는 싸오 썸낭(가명·28)은 “(범죄단지에 있는) 한국인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출입 제한이 강한 것으로만 알았지, 단지 내 가혹 행위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며 “캄보디아인들은 범죄단지(웬치)에 대해 잘 알 수 없는데 박씨 사건의 전말을 알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로 한국·캄보디아 양국은 범죄단지에서 일어나는 사기 근절 의지를 드러냈지만 기대감은 높지 않았다. 범죄조직이 국경을 넘어 동남아 전역에 퍼져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조직이 거대 자본으로 만든 범죄 생태계가 이미 ‘산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인들도 기초적인 한국어만 할 줄 알면 전화·채팅 사기에 투입된다는 증언도 나왔다. 현지인들로 이뤄진 한 단체 대화방에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홍보하며 한 달에 3000달러(한화 약426만원)를 받을 수 있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썸낭은 “캄보디아에서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며 “지인 중에 3개월씩 일하고 나오는 사람도 많고, 제안도 많이 온다”고 했다.
경찰의 수사 의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썸낭은 “경찰이 먼저 1만5000달러(한화 약 2100만원)를 내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경찰은 돈을 벌기 위해 범죄자를 붙잡고 다시 풀어준다”며 “경찰 자격증을 돈으로 사고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캄보디아의 사기 범죄조직은 국경 넘어 인근 국가로 거점으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감금 한국인을 구조해 온 오창수 선교사는 “이미 1만명 이상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육로·해로 할 것 없이 도주하는 영상들을 제보받고 있다”고 말했다. 라오스에 사는 교민 조현상씨는 “라오스-중국 국경 지역에도 지난해 1월 취업사기 등 범죄 피해를 막겠다며 한국 외교부가 여행금지 구역을 지정했었다”며 “비단 일부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경지대에선 경계가 강화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도 프놈펜에서 약 3시간 거리에 베트남과 맞닿은 캄보디아 국경도시 깜폿주 프렛 착 국경검문소 입구 바리케이드는 내려가 있지 않았고, 제복을 입은 경찰 대신 검문소를 지키던 경비 2명은 해먹에 누워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국경검문소 인근에 있는 카지노에선 10분 간격으로 베트남에서 넘어온 빈 밴이 카지노에서 남성들 4∼5명을 태우고 국경을 넘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30분여 동안 오토바이 수십 대와 트럭 5대, 미니 밴 3대가 국경을 넘었지만 제재를 받지 않았다.
캄보디아인 택시 기사 찬싸 엿(35)은 “국경이 맞닿아 있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오고 가는 일이 자유롭고, 특별한 사항이 있지 않으면 제재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사기 범죄 근거지로 알려진 ‘태자단지’와 ‘망고단지’ 등이 위치한 따께오 주에서 가까운 베트남 국경이지만, 정부 대응이 발표된 이후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검문소 인근 상인들은 평가했다. 검문소 직원은 ‘바리케이드를 왜 올려두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니 그렇다”며 “언제 닫는지는 정해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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