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노조 대표 “성차별 모욕 의도는 없어”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정부 수반인 조르자 멜로니(48) 총리를 겨냥한 좌파의 거친 공격이 ‘여성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2022년 10월 극우 및 우파 성향 정당들을 규합해 연립정부를 출범시킨 멜로니는 서유럽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장 ‘코드’가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탈리아 최대 노동조합인 CGIL의 마우리치오 란디니 대표는 최근 멜로니를 “트럼프의 코르티쟈나(cortigiana)”라고 부르며 비난했다. 이탈리아어로 코르티쟈나는 궁정에서 왕족의 시중을 드는 여성, 곧 궁녀를 뜻하지만 귀족 등 남성 권력자를 상대하는 정부(情婦)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사전에는 ‘고급 매춘부’라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설명도 등장한다.
최근 가자 지구 평화 협정이 체결되기 이전 CGIL는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여러 차례 주도했다. CGIL는 또 영국·프랑스 정부가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대등한 독립 주권 국가로 승인한 것과 달리 이탈리아는 미국 눈치만 보며 친(親)이스라엘 노선으로 일관한다고 비난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집트 휴양 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트럼프 등 세계 각국 정상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가자 지구 평화 협정이 체결됐다. 2023년 10월 이후 2년 넘게 지속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전쟁을 끝내는 내용의 이 협정은 트럼프가 주도했다. 멜로니도 협정 체결식에 참석해 가자 지구에 평화가 정착하길 기원하며 트럼프의 업적을 평가하긴 했다.

하지만 란디니는 가자 지구 평화 협정에 이탈리아 정부가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멜로니는 가자 지구의 평화를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며 멜로니의 역할을 “트럼프의 궁녀”로 폄훼했다. 이어 “다행히도 이탈리아 시민들은 이 나라의 존엄성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말로 반(反)이스라엘 시위를 주도한 CGIL이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이탈리아 체면을 살렸다고 강조했다.
멜로니는 ‘궁녀’라는 표현에 즉각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이 단어(궁녀)의 의미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다”며 사전에 ‘매춘부’라는 설명이 적시돼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좌파 진영 지도자들은 늘 우리에게 ‘여성을 존중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뒤로는 ‘매춘부’ 같은 표현을 써 가며 여성을 비난한다”는 말로 여성을 대하는 자칭 ‘진보 세력’의 이중적 잣대를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란디니는 “성차별적 모욕을 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는 “멜로니가 트럼프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 표현을 썼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멜로니는 트럼프가 아직 당선인 신분이던 올해 1월 초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리조트의 트럼프 거처를 예고 없이 방문해 그와 단독 면담을 가졌다. 트럼프는 멜로니를 “영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지도자”로 규정하며 “멜로니와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소감을 밝혔다. 멜로니는 서유럽 국가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트럼프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최근 이집트에서 멜로니와 재회한 트럼프는 “정말 아름다운 여성 정치인”이란 말로 멜로니에게 찬사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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