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당국, 바티칸 임명 두 주교 첫 공식 인정
“양측 오랜 대화 결과” VS “공산당에 양보”
국가 시스템 하에서만 종교 활동을 허용하던 중국이 처음으로 바티칸이 임명한 지하교구 주교를 공식 인정했다. 이는 바티칸과 중국 사이의 오랜 대립 관계가 완화되는 신호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지하 종교 활동까지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7일 중국과 바티칸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당국은 자국 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가톨릭 지하교구의 마옌언 주교와 추이타이 은퇴 주교를 공식 인정했다.
두 사람은 각각 시완쯔 교구와 쉬안화 교구 소속이었다. 두 교구는 1946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바티칸 공식 교구로 인정되었으나, 중국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지하에서 활동해 왔다. 특히 쉬안화 교구의 추이타이 주교는 여러 차례 당국에 구금된 적이 있어, 중국 종교 박해의 상징적 인물로 통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지하교구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교황청은 앞서 지난 7월 시완쯔 교구와 쉬안화 교구를 폐지하고, 새로운 장자커우 교구로 통합했다고 지난달 10일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곳의 첫 번째 주교로 왕정구이 주교를 임명했다.
교황청이 ‘새로운 교구’라고 칭한 장자커우는 중국의 가톨릭 관리 주체인 중국천주교애국협회의 공식 교구로 1980년부터 운영되던 곳이다.

중국과 바티칸은 2018년 주교 임명에 관한 임시 협정을 체결하고 대화를 이어왔다. 지난 5월 즉위한 레오14세 교황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바티칸은 중국 당국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교구를 공식 인정하면서 지하교구 두 곳을 폐지·통합하고, 중국 당국은 지하교구의 주교를 인정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은 지난달 12일 보도자료에서 “마옌언 주교와 추이타이 주교가 인정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은 교황청과 중국 당국 간의 대화 결과로 새 교구의 친교 여정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계에서는 이번 합의가 ‘중국 공산당에 대한 양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영국의 가톨릭 전문 매체 가톨릭헤럴드는 “두 지하교구를 통합한 것은 오랫동안 국가 감독에 저항해온 성직자들과 신자들에게 슬픔을 안겨줬다”면서 “수십 년간 박해 속에서도 바티칸에 충성했던 가톨릭 공동체를 소외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뉴스에이전시는 “중국 정부가 승인 없이 설립한 장자커우 교구를 바티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중국이 교구 경계를 독자적으로 재편성한 것에 대한 긴장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하주교 인정 후 중국 당국의 움직임을 보면 가톨릭에 대한 통제 강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게 보인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29일 ‘종교의 중국화 체계적 추진’을 주제로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을 주재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 종교의 중국화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하도록 적극 이끌어야 한다”면서 “그래야 종교의 온순(和順)과 민족의 화목, 사회의 조화, 국가의 장기적 안정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가이드 삼아 종교계 인사와 신도 군중이 올바른 국가관·역사관·민족관·문화관·종교관을 굳게 수립하고, ‘다섯 가지 인식’을 끊임없이 증진해 중국식 현대화 건설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다섯 가지 인식은 △위대한 조국에 대한 인식 △중화민족에 대한 인식 △중화문화에 대한 인식 △중국공산당에 대한 인식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리킨다.
종교가 소수민족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티베트 불교나 이슬람교, 서방 종교인 가톨릭과 기독교 등 중국 내 다양한 종교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 틀 안에서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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