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전 11시6분 서울 관악구 조원동의 한 피자가게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다는 신고가 119 상황실에 접수됐다. 신고자는 “배”를 찔렸다며 “3명이 다쳤고 나머지는 의식이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서울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 녹취록을 보면 소방이 “응급처치 부서 잠깐 연결할 거니까 끊지 마세요”라고 말하자 신고자는 “제가 못 움직여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답했다.
이후 현장에 있던 3명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망자는 해당 피자 프랜차이즈 본사 임원과 가게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업자 부녀였다. 이들은 가게 인테리어 하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가해자인 40대 가맹점주는 범행 후 자해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경찰은 사업상 갈등이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진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인데, 갈등의 원인을 두고 가맹점주와 본사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 대낮 서울 한복판 피자가게에서 벌어진 일
6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3일 오전 가맹점주 A(41)씨가 자신의 매장에서 본사 임원 B(49)씨와 인테리어 업자 부녀인 C(60)씨, D(32)씨를 주방 칼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범행 직후 자해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관련기사 세계일보 9월4일자>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2023년 10월 가맹계약을 맺고 매장을 운영해왔는데, 최근 타일이 깨지고 누수가 발생하는 등 인테리어 하자가 생겨 본사와 갈등을 겪었다. A씨는 병원 이송 과정에서 “인테리어 하자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내가 찌른 게 맞다”고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은 3일 오후 본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관계자는 경찰에 출석해 본사와 점주 사이에 문제가 없었다는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사업상 갈등이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범행 동기 파악을 위해서는 A씨의 진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A씨는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으며 퇴원까지 수일이 걸린다. 경찰은 A씨가 회복하는 대로 살인 혐의로 신병을 확보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할 방침이다.

◆ “본사 갑질 너무 심했다”... 가맹점주 측 주장
A씨 가족들은 기자들과 만나 본사의 갑질이 사건의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3일 중앙일보에 “본사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 인테리어를 한 지 2년도 안 됐는데 누수로 물이 찼고, 타일이 깨져서 냉장고가 주저앉는 등 하자가 발생했는데 무상 보수를 안 해주겠다고 해서 갈등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사건 당일 본사는 인테리어 업자와 상의하라고 하고, 인테리어 업자는 본인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등 둘이 말을 맞추고 온 것 같았다”며 “당연히 보수를 해줘야 하는 부분인데 너무 화가 났다”고 A씨가 토로했다고 전했다.
또한 “배달 플랫폼 수수료도 너무 비싸서 힘든데 본사에선 가맹점 수익 등을 너무 받아간다”며 “최근엔 1인 세트 메뉴를 새로 만들라고 강요했는데 인건비도 못 건지고 오히려 적자가 나는 메뉴라 고통스러워했다”고 주장했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A씨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분들께 죄송하다”며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결코 갑질 없었다”... 본사 측 전면 반박
피자 업체 본사는 연이어 입장문을 내고 갑질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3일 본사는 “2021년 10월 직영점 오픈 후 가맹사업을 한 이래 단 한 번도, 어떤 점주에게도 리뉴얼을 강요한 적이 없다”며 “인테리어 업체는 A씨가 직접 계약한 곳이었고, 본사 임원이 인테리어 업체와 점주의 중재를 위해 방문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고 밝혔다.
5일 2차 입장문에서는 1인 세트 메뉴 강요 의혹에 대해서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A씨는 본사가 배달의민족에서 신규로 출시한 ‘한그릇 배달’에 입점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본인의 잘못을 본사와의 갈등으로 바꾸기 위한 허위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배민의 ‘한그릇 배달’은 1인 또는 소규모 가구를 겨냥해 최소주문금액 없이 주문할 수 있는 1인분 식사 메뉴를 모아놓은 서비스다. 점주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저가 메뉴만 등록하고 기존 가격에서 약 20%를 할인해야 한다. 배민 측은 건당 1500∼2000원의 지원금을 제공하고 앱 광고에 노출해준다.
본사는 “한그릇 배달에 참여하면 점주의 매출은 증대하나 수익은 감소할 수 있는 구조라 본사는 처음부터 권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A씨는 평소 본사가 방문했을 때 배민의 수수료 정책과 자주 바뀌는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했다”며 “본사의 갑질이 아니며,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피해자의 유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달라”고 했다.

◆공정위, “프랜차이즈 협상력 균형 맞춰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위반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4일 “공정위는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경찰 수사를 통해 범행 관련 사실관계가 파악되고, 그 결과 가맹사업법 위반이 있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주병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조원동 칼부림 살인 사건에 대해 “입점 업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스트레스가 커질 때 얼마나 흉악한 사건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맹점주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와 균형 있는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며 “의회와 공정위가 협력해서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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