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전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 무거운 질감 스타일로 생산/산타 마게리타 설립자 가에타노 마르조토가 가볍게 마시는 요즘 스타일 피노 그리지오 레시피 완성/토레셀라 가성비 뛰어난 피노 그리지오·프로세코 선보여

이탈리아를 여행하다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화이트 와인이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품종입니다. 신선한 레몬향을 중심으로 사과, 배, 흰꽃, 허브가 어우러집니다. 산도가 높고 드라이하며 알코올 도수는 비교적 낮아 바디감이 라이트한 화이트 와인으로 대부분의 음식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지금은 깔끔한 피니시가 돋보여 가볍게 마시는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가 됐지만 과거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는 스타일이 달랐습니다. 껍질에서 색소와 풍미를 우려내는 침용 과정을 통해 질감이 훨씬 더 무겁고, 타닌과 구조감이 느껴지는 화이트나 로제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런 피노 그리지오를 가볍게 마시는 현대적인 스타일의 레시피를 완성한 생산자가 이탈리아 베네토에서 산타 마게리타(Santa Margherita)를 설립한 가에타노 마르조토(Gaetano Marzotto) 백작입니다. 산타 마게리타 와인 그룹에서 가성비 뛰어난 모던 피노 그리지오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칸티네 토레셀라(Cantine Torresella). 무더운 여름날 한 모금만 마셔도 불쾌지수를 한 방에 날리는 토레셀라의 피노 그리지오와 프로세코를 만나러 아름다운 베네치아 만의 쌀타 디 포르토그루아로(Fossalta di Portogruaro) 마을로 떠납니다.

◆피노 그리지오 캐릭터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그리(Pinot Gris), 피노 블랑(Pinot Blanc) 품종은 DNA가 거의 동일합니다. 유전자 변이로 껍질 색소(안토시아닌)의 발현이 점점 적어지면서 다른 품종으로 진화했습니다. 피노 그리의 그리(Gris) 회색이란 뜻으로 실제는 레드와 화이트의 중간 색조인 회색·분홍·청동빛을 띱니다. 안토시아닌 발현이 거의 사라진 피노 블랑은 다른 화이트 품종과 비슷한 녹황색을 띱니다. 피노 그리(Pinot Gris·프랑스명),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이탈리아명), 그라우부르군더(Grauburgunder·독일명)는 모두 같은 품종입니다. 피노 그리의 주요 산지는 프랑스 알자스, 이탈리아 북동부(베네토, 프리울리, 트렌티노-알토 아디제), 독일, 미국 오리건, 뉴질랜드, 호주 등입니다.

기후에 따라 아로마 캐릭터 다릅니다. 서늘한 기후에선 레몬, 라임, 그린애플, 흰 꽃, 미네랄이 돋보이고 따뜻한 기후에서는 배, 복숭아, 열대과일, 허니, 향신료가 두드러집니다. 프랑스는 알자스가 대표 피노 그리 산지입니다.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와 스타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껍질이 더 두꺼워 산도가 높으면서도 탄탄한 느낌의 꽉 찬 풀바디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아로마틱한 품종의 대명사인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 보다는 약하지만 열대과일 풍미가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보다 더 풍성하게 납니다. 장기 숙성도 가능하고 숙성되면 복합적인 아로마가 발현됩니다.
반면 트레티노-알토 아디제, 베네토 등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는 레몬향을 중심으로 가볍고 신선합니다. 이에 음식과 먹기 좋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가성비 뛰어난 화이트 와인으로 전세계에 널리 퍼졌습니다. 미국 오리건, 호주, 뉴질랜드 등 뉴월드 스타일은 과일향을 강조하고 일부는 오크 숙성하며 알코올과 바디감 높은 점이 특징입니다.

◆피노 그리지오 주요 산지
델레 베네치아 DOC는(Delle Venezie DOC)가 대표적인 피노 그리지오 산지입니다. 이탈리아 북동부 3개 주 베네토,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 트렌티노 일부를 아우르는 산지로 이곳에서 이탈리아 전체 피노 그리지오의 약 85%가, 전 세계의 약 40%가 생산됩니다. 2024년 기준 생산량은 약 2억3000만병(170만6466헥토리터)입니다. 원래 이 지역의 피노 그리지오는 ‘delle Venezie IGT’ 레이블로 유통되다가 워낙 생산량이 많고 수출 중심 품종이다 보니 품질 관리 필요성이 제기돼 2017년 빈티지부터 DOC로 승격됩니다.

2011년 지정된 베니치아(Venezia) DOC는 포 강(Po) 평야의 동쪽 지역, 베네치아와 트레비소에 걸쳐 있는 비교적 좁은 지역 DOC로 여러 품종과 스타일을 포괄합니다. 북쪽에는 돌로미티 산맥, 남쪽에는 아드리아해와 석호 지역이 자리하며 평평한 지형과 바람의 영향 덕분에 일년 내내 온화하고 습한 기후가 보장됩니다. Venezia DOC는 1985년의 혹한 피해 이후, 포도밭을 재정비하면서 식재 밀도와 클론 선택에 중점을 둬 와인의 품질을 추구하는 새로운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베네치아 DOC는 피노 그리지오는 물론, 국제 품종과 토착 품종으로 만드는 화이트, 레드, 로제, 등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며 영할 때 마시는 와인부터 숙성 잠재력을 지닌 와인까지 스타일도 다양합니다.

◆모던 피노 그리지오의 탄생
1960년대 이전 이탈리아의 전통 방식 피노 그리지오는 스타일이 달랐습니다. 껍질을 함께 발효하거나, 발효 전 일정 기간 껍질과 접촉시키는 라마토(Ramato) 방식으로 양조해 와인 색은 구리빛, 연한 오렌지빛, 분홍빛을 띠었습니다. 질감이 더 무겁고, 타닌과 구조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혹은 로제에 가까운 스타일이죠. 라마토는 이탈리어로 구리빛이란 뜻으로 피노 그리지오 껍질에서 자연스럽게 추출되는 붉은~주황빛 색소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전통방식 대표산지는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베네치아 줄리아(Friuli-Venezia Giulia)와 베네토 일부 지역입니다. 복숭아, 살구의 복합적인 과실향, 약간의 스파이스, 꿀과 견과류 뉘앙스가 대표적이고 산도는 상대적으로 낮고, 바디감이 중간 이상이었습니다.

산타 마르게리타를 설립한 마르조토 백작이 1961년 이탈리아 최초로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한 모던 피노 그리지오를 선보이면서 피노 그리지오의 스타일은 마르조토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마르조토 백작은 트렌티노-알토 아디제에서 수확후 바로 포도즙만 부드럽게 압착해 껍질 접촉을 완전히 배제한 화이트 와인 양조를 시도합니다. 껍질에서 색·타닌을 전혀 추출하기 않고 온도 조절 발효로 신선한 과실향을 보존하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색상은 매우 옅은 레몬색이나 또는 거의 무색에 가까운 색상을 띠고 레몬, 사과, 배, 레몬, 감귤, 흰꽃, 허브 등 깨끗하고 신선한 과일향이 도드라지는 독특한 피노 그리지오가 탄생됩니다.

출시 직후 바로 마시기 좋은 프레시한 스타일의 피노 그리지오는 아페리티프는 물론 브런치, 특히 해산물 요리 등 다양한 음식과 궁합이 뛰어납니다. 산도가 높고 가볍고 드라이하며 깔끔한 피니시가 돋보이는 스타일이 1960~1970년 해외 소비자들의 트렌드에 부합하면서 특히 미국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또 산타 마게리타 피노 그리지오는 1979년 ‘이탈리아 최고의 화이트 와인’으로 선정됩니다. 덕분에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피노 그리지오’라는 인식이 공식처럼 굳어지게 됩니다. 마르조토가 가볍고 산미 좋은 ‘모던 피노 그리지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산타 마게리타 역사
섬유업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사업가 마르조토 백작이 1935년 베네토의 포쌀타 디 포르토그루아로(Fossalta di Portogruaro)에 방치된 땅 1000ha를 개간하면 산타 마게리타의 와인 역사가 시작됩니다. 와이너리 이름은 그의 아내 마게리타 람페르티코(Margherita Lampertico)에서 따왔습니다. 마르조토는 와이너리를 동부 베네토, 알토 아디제 계곡, 프리미엄 프로세코 산지 발도비아데네(Valdobbiadene) 언덕 등 이탈리아 북동부 포도 재배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그 결과 산타 마게리타는 이탈리아 여러 곳에 와이너리를 거리는 와인 그룹으로 성장합니다. 알토 아디제의 케트마이르(Kettmeir), 키안티 클리시코의 라몰레 디 라몰레(Lamole di Lamole), 수퍼투스칸의 고향 마렘마(Maremma)의 사쏘레갈레(Sassoregale), 시칠리아의 페우도 지르타리(Feudo Zirtari),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 프란치아코르타 까델 보스코(Ca’ del Bosco) 등이 산타 마게리타의 와이너리입니다. 최근에는 미국 오리건으로 진출해 윌라멧 밸리(Willamette Valley)의 로코 와이너리(ROCO Winery)도 인수했습니다.

◆모든 음식과 찰떡궁합 토레셀라 와인
산타 마게리타가 1984년 베테토에 설립한 와이너리 토레셀라는 프로세코, 피노 그리지오, 카베르네 소비뇽 등 착한 가격의 마시기 편한 다양한 와인들을 생산합니다. 토레젤라 수출매니저 에리카 갈론(Erika Gallon)을 만났습니다. 토레셀라는 나라셀라에 수입합니다.
토레셀라 와인 레이블이 독특합니다. 왜가리의 시점으로 하늘에서 포도밭을 내려다보는 듯한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토레셀라는 로마 제국부터 와인을 위한 포도밭이 많았던 이탈리아 동부 베네토 지역에 거점을 두고 설립됐어요. 한쪽은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으며 다른 쪽은 풍족한 생물 다양성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베니스 석호를 접하고 있답니다. 유럽에 얼마 남지 않은 습지 지역 중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왜가리를 비롯한 다양한 철새들의 서식지에요. 이런 자연 환경의 특징을 레이블에 표현했답니다.”

토레셀라는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합니다. 또 유리 회사를 직접 운영하며 와인병을 재활용하고, 와인 레이블도 재생용지를 사용하며 전기도 태양열을 이용해 온실 파괴를 최소화합니다.
토레셀라 포도밭은 빌라노바(Villanova)에서 포쌀타 디 포르토그루아로(Fossalta di Portogruaro) 바다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바다와 가까워 겨울은 온화하고 북쪽 알프스에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토양은 리벤차(Livenza)강과 탈리아멘토(Tagliamento) 강이 만든 충적층의 점토질로 와인에 우아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바다와 가까워 미네랄도 뛰어납니다.

◆피노 그리지오와 프로세코
▶토레셀라 프로세코 엑스트라 드라이
글레라(Glera) 100%입니다. 레몬, 감귤, 청사과, 복숭아의 상큼한 과일향으로 시작해 데이지 꽃 같은 플로럴 노트가 복합미를 드러냅니다. 탱크에서 발효와 2차 숙성을 마치는 샤르마 방식으로 만드는 프로세코는 보통 버블이 크고 거칠기 마련인데 토레셀라 프로세코는 두달 동안 안정화 과정을 거친 뒤 병입해 작고 파인한 버블이 돋보입니다. 식전주로 즐기기 좋고, 해산물, 닭고기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프로세코 DOC 규정은 다른 품종을 15%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 글레라 재배에 비용이 많이 들어 다른 와이너리들은 저렴한 품종을 섞기도 하지만 토레셀라는 글레라 100%로만 프로세코를 만듭니다.

▶토레셀라 프로세코 로제
글레라를 주 품종으로 피노네로(Pinot Nero·피노누아)를 블렌딩합니다. 감귤, 복숭아의 과일향에 브리오쉬 아로마가 더해집니다. 해산물, 샐러드, 파스타 등과 좋은 궁합을 보이며 향신료가 가미된 아시아 음식도 잘 어울립니다. 코에서는 클레라 품종의 상큼한 과일향, 입에서는 피노 누아의 우아한 아로마가 잘 느껴집니다. 토레셀라는 5~6년전부터 피노 누아를 심어서 프로세코에 블렌딩하고 있으며 피노 누아 스틸 와인도 생산합니다.

▶토레셀라 피노 그리지오 Veneto DOC
피노 그리지오 100%입니다. 감귤, 청사과, 살구, 복숭아의 과일향과 플로럴 노트가 잘 어우러집니다. 온도가 오르면 열대 과일향과 우아한 풍미가 더해집니다. 포도밭이 바다와 가까워 솔티한 미네랄도 느껴집니다. 모던 피노 그리지오의 원조답게 과일향 위주로 깔끔하게 뽑아낸 점이 돋보입니다. 피노 그리지오는 토레셀라의 아이코닉한 와인이라 그해 포도 품질이 떨어지면 생산량을 줄일 정도로 품질과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토레셀라 카버네 소비뇽 Veneto IGT
카버네 소비뇽 100%입니다. 블랙 베리, 블랙 체리의 과일향과 세이지의 허브, 블랙페퍼의 스파이스 노트가 어우러지며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바비큐, 가금류 요리, 숙성 치즈와 완벽한 페어링을 선사합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좀 묵직하게 빚어지는 스타일이지만 토레셀라 카베르네 소비뇽은 생동감 있고 신선한 과일향과 산도를 지닌 미디엄 바디 와인으로 접근성이 좋습니다.

▶토레셀라 메를로 Veneto IGT
메를로 100%입니다. 블랙베리 검은 자두로 시작해 히비스커스, 스파이스 아로마가 복합미를 더합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타닌, 생기발랄한 산도, 알코올 도수의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전반적으로 토레셀라 레드 와인들은 파워풀하지 않고 캐주얼하기 즐기는 스타일이라 음식 페어링도 쉬운 편입니다. 알코올도수도 13% 정도로 오크도 많이 사용하지 않고 내추럴한 느낌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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