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70에 이제 남은 희망이라고는 오로지 조국인 조선의 독립밖에 없소. 죽기 전 내 평생의 소원을 이뤘으니 여한이 없소. 제일 기쁘오.”
이만정(1870~1949) 선생이 생전 꿈에 그리던 조국 독립을 기념하며 한 말이다.
14일 국립창원대에 따르면 이 선생은 35살이던 1905년 노동이민으로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하며 살아갔다.

그는 빅아일랜드 사탕수수 농장에서 잠자는 몇 시간을 빼고 일하며 번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았다.
이 선생은 그렇게 모은 돈을 조국의 독립을 위한 운동자금으로, 독립군을 지원하는 데 썼다.
그는 당시 해외 한인 사회 결속과 항일운동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 중 한명이다.
하지만 생전 그의 공적은 널리, 그리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을 했지만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국립창원대가 2019년부터 자체 조사한 ‘하와이 한인 이민자 연구’를 통해 이 선생의 독립운동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창원대는 하와이 현지 묘지 조사를 통해 소재가 불분명했던 묘비를 직접 발굴하고, 기록과 교차 검증을 통해 이 선생의 생전 독립운동 업적을 확인했다.
창원대 조사 결과 이렇게 독립운동 공적이 뚜렷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하와이 독립운동가들이 뒤늦게 추가로 파악됐다.
윤계상(1867~1922) 선생은 하와이 결사단체 ‘포와하나연합회’의 총무를 맡으며,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부회장과 중앙총회 하와이특명위원 등을 맡았다.
윤 선생은 하와이 한인여학교 등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교육과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영로(1868~1947) 선생은 1909년 국민회 산하 아이야 지방회 총무 겸 서기를 맡아 국민의무금‧인구세 등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손점상(1899~1983) 선생은 1916년 하와이로 이민간 뒤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혈성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
해방 후 1965년에는 자신이 자랐던 당시 경남 진해(현 창원시 진해구)에 자활양재학원을 설립해 가난한 여성들에게 무료로 기술을 가르치는 등 조국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창원대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하와이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지만,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65명에 대해 국가보훈부에 추서를 신청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하와이 한인 이민사회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금 △교민 교육 △민족정신 고취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통해 조국 광복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창원대는 65명에 대한 개인 공적조사서와 수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확인한 입증자료 등을 추서 신청서에 첨부했다.
국가보훈부의 심사를 거쳐 이들의 서훈 수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박민원 창원대 총장은 “이번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했지만 머나먼 타국에 잊혀 있던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며 “우리 대학의 연구 역량을 토대로 한 분의 애국지사를 더 찾아내고 그 위업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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