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이틀 앞두고 민노당 첫 공개
민주당·국힘도 제작·배포 검토
“시도는 좋지만 너무 늦어” 지적
6·3 대선 사전투표를 이틀 앞둔 27일 한 정당이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공약집’을 펴냈다. 말 그대로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공약집에 담긴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쓴 것이다. 그동안 주요 정당의 10대 공약을 민간단체가 ‘쉬운 10대 공약’으로 공개하긴 했지만, 정당 차원에서 공약을 개정해 내놓기는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개혁신당은 이날까지도 정당 차원의 쉬운 공약집을 내놓지 않았다.

27일 서울 영등포구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는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민주노동당의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쉬운 공약’을 살펴봤다. 공약을 소리내 읽던 박현철(38) 발달장애인 활동가는 “드디어 나왔다. 무슨 말인지 설명해주니 정말 이해하기 쉽다”라고 기뻐했다. 화면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공약 중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라는 부분에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라고 풀어서 쓴 설명이 있었다.
2023년 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제작 가이드와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이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한자어와 영어 단어를 빼고 줄글로 공약을 설명했는데 ‘예산’을 ‘돈’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중요한 부분에 색깔과 굵은 글씨체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날 모인 발달장애인 활동가 5명은 쉬운 공약집 덕분에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공보물은 발달장애인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주변의 도움을 받고도 하루 종일 공부해야 했다. 박경인(30) 발달장애인 활동가는 “글이 너무 많으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서 “중요한 게 뭔지 짚어주니까 이해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다만 사전투표를 이틀 앞두고 대선에 출마한 후보 중 단 한 곳에서만 쉬운 공약집이 나왔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반응이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국장은 “10년 넘게 이런 요구를 해왔고 2022년에는 국회에 여러 차례 찾아가 쉬운 공보물을 비롯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면서 “발달장애인이 공약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사전투표를 이틀 앞두고 발표된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공약집은 이날 민주노동당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 배포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제작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노동당의 쉬운 공약집마저도 장애인에 관한 정책만을 다루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강고은 피플퍼스트 자립지원팀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 사회, 안보 등 다른 분야는 쉬운 공약이 전무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당의 선의에 기대지 않으려면 결국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22년 1월 장추련 등은 국가를 상대로 알기 쉬운 선거 공보물, 그림투표용지 등을 요구하며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원고들 청구는 공직선거법 개정에 의해 법률적 근거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각하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심 법원은 “문자 이해가 어려운 사람들 위한 기구를 마련해 제공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주도한 이승헌 국장은 “자신을 선택해줄 수 있는 유권자에게 정책을 이해시키는 것은 후보자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거 공보물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어 국회에선 입법 움직임도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선거공보를 마련할 것을 명시하고 의무화하는데, 발달장애인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3월25일 공직선거법 제65조 제1호에 ‘점자형 선거공보 및 발달장애인용 선거공보’, 제65조 제7항에 ‘시각장애 선거인·발달장애선거인’ 등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서 의원은 “쉬운 선거공보물 제작 등을 제도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발달장애인 참정권 배제라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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