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8일, 조력자살/미야시타 요이치/박제이/아토포스/1만6000원
인터넷에서 ‘안락사’를 검색하면 가장 상위에 연관 검색어로 ‘스위스 안락사’가 뜬다. 스위스는 외국인의 안락사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2016년, 2018년에 이미 한국인 두 명이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은 일본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가 안락사에 대해 취재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신체 기능이 서서히 상실돼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다계통 위축증’ 진단을 받은 일본 50대 독신 여성 고지마 미나는 완전히 거동이 불가능해져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조력자살이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안락사의 일종인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점에서 의료인 등 타인이 환자의 생명을 끊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다르다.
저자는 앞서 자신이 쓴 안락사 관련 책을 읽은 고지마가 메일을 보내온 것을 계기로 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하며 취재했고 그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고지마는 스위스의 한 시골 마을에서 조력자살 단체 ‘라이프 서클’의 주선으로 약국에서 구매한 독극물을 주입받아 51년간의 생을 마감한다. ‘조력자살’의 취지에 맞게 독극물 주입을 조절하는 스토퍼는 자신이 직접 열었다.
그는 먼저 떠나보낸 반려견의 사진을 손에 쥔 채 동행한 두 언니에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모두 와 줬잖아. 엄청 행복했어”라는 말을 남기고 잠이 든 뒤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동생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본 언니들은 오열했지만, 몇 번이나 목을 매 자살하려 했던 동생이 원하던 방식으로 편안하게 세상과 작별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저자는 책에서 안락사의 필요성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자 삶의 방식이 있듯 저마다 죽음의 방식이 있는 것이라면서 안락사 역시 하나의 선택지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고지마 미나의 이야기는 NHK에서 ‘그녀는 안락사를 선택했다’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고지마 미나뿐 아니라 죽음 가까이에 있는 환자와 의사, 간병인과 보호자들을 취재하며 각자가 지닌 죽음에 대한 단상을 소개한다. 죽음을 앞두고 인간은 왜 안락사를 원하는가. 죽을 권리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살아 있는, 살아 있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박태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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