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날 대체휴일인 6일, 전남 함평군 대동면의 들판에서는 조생종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박모(65)씨가 재배한 1600㎡ 규모의 양파밭 작황은 예년보다 더 좋다. 풍년에 가깝다. 하지만 박씨는 수확을 앞두고 출하 시기를 놓칠까 노심초사했다. 박씨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러시아 농부들’이었다. 박씨의 아들이 인터넷을 통해 ‘러시아 농부들’을 구해 준 것이다.
이날 박씨 양파밭에는 20대의 러시아 농부 7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양파를 뽑고 선별해 그물망에 담는 일을 척척 해냈다. 이들 7명은 최대 90일짜리 관광비자로 입국해 전라도를 여행하던 중에 ‘농촌 일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선뜻 농부를 자처한 것이다.
러시아 농부의 하루 일당은 7만∼8만원으로 러시아보다 3배가량 많다. 숙소까지 제공 받는다. 이날 만난 블라디보스토크 출신의 러시아인 A(24)씨는 “수확 철에 잠깐 일을 거들어도 여행 경비에 큰 도움이 된다”며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기회가 되면 또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러시아 농부는 박씨 마을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서 벌써 1주일치 양파 수확 도움이 예약됐다. 올해 박씨 마을의 양파 수확은 러시아 농부들이 도맡은 셈이다.
전남지역의 농번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면서 외국인들이 농촌 들녘을 채워가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로 일손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인건비도 하루 12만원을 넘으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의 일손으로 대체되고 있다.
파종과 수확 철이 겹치는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외국인 농부 수혈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지자체가 필요한 인원을 법무부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90일 내에서 체류가능한 단기취업(C-4) 비자를 발급하고, 지자체가 외국인을 농가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는 2597명으로 확정됐다. 법무부는 지난달 26일까지 전국 42개 지자체(1296개 농가·7개 영농법인)로부터 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신청을 받아 최종적으로 41개 지자체에 대해 2597명의 계절근로자 도입을 허용했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농가당 최대 허용 인원을 작년 4명에서 5명으로 확대했다. 또 영농조합법인에도 최초로 계절근로자 신청을 허용해 7개 법인에 17명을 배정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가 확대되면서 농촌 들녘의 모습이 다국적 농부들이 가득한 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태국 등 주로 동남아시아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들녘이 올해는 러시아 국적 근로자가 부쩍 늘어난 게 눈에 띄는 변화다.
농가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꼭 필요한 시기에 심각한 농촌 인력난의 숨통을 터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남군 농민 이모씨는 “지난해 고구마 순 심기에 외국인 근로자의 큰 도움을 받았다”며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게 농사일이라 일이 좀 서툴러도 외국인을 쓰면 적기를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평=글·사진 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