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3월18일 독일의 빌헬름 2세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을 해임한 사실을 접하면 우선 지평선상에서 1차 대전의 피바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물론 비스마르크가 그때 물러나지 않았다 해서 1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철혈(鐵血)재상’으로 통하면서도 ‘철혈(哲血)재상’의 면모도 갖췄던 그가 새 황제에게 내쫓기듯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것은 비스마르크가 독일 통일을 위해 노력했던 과정을 더듬어 보면 드러난다.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위해 불가피한 프랑스와의 대결을 앞두고 영국과 러시아 등과의 우호관계나, 최소한 중립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곡예를 하다시피 했었다. 이에 빌헬름 2세는 비스마르크는 물러나게 하더라도 그의 전략까지는 버리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어렵게 자수성가한 재벌이 죽고 고생을 모른 채 상속을 받은 재벌 2세처럼 기세가 등등한 빌헬름 2세는 노재상의 ‘조심스럽고 낡아빠진 전략’도 팽개쳤다. 빌헬름 2세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에 나서기 위해 해군을 증강한 것이 좋은 예였다. 그것은 비스마르크가 영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장 꺼린 것이었다.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앞두고 영국을 설득하기 위해 “프랑스는 너무 강력해 또 나폴레옹 시대 같은 파란을 몰고 올 수 있다. 그것을 견제하려면 독일이 통일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득했었다. 결국 빌헬름 2세가 증강한 독일 해군은 1차 대전으로 대부분 침몰해 증강 이전보다 허약해졌다.
독일의 비극은 독일 황실의 작은 비극에서 싹이 텄다고 볼 수도 있다. 비스마르크와 함께 독일을 통일한 빌헬름 1세가 1888년 3월 9일 별세하자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3세가 계승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3세가 등극 99일 만에 후두암으로 사망해 어딘지 불안정한 데가 있는 그의 아들 빌헬름 2세가 대를 이었던 것이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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