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감독 조 루소/안소니 루소, 시빌 워)는 마블 슈퍼히어로 무비의 강점이 ‘촘촘한 스토리’에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1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 벗은 영화는 앞서 공개된 해외에서의 호평세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로 147분간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경쟁사인 마블 스튜디오와 DC필름은 비슷한 시기에 자사 슈퍼히어로들의 갈등과 반목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지난 3월 개봉한 DC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은 엄청난 제작비와 물량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 두 영웅이 정작 왜 싸워야 하고 어떻게 화해하는지 관객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DC를 향한 실망이 워낙 컸던 데 대한 반작용인지 몰라도 영화 팬들이 ‘시빌 워’에 대해 거는 기대감은 실로 엄청났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시빌 워’의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액션이나 CG는 전작들과 크게 달라진 바 없다 하더라도, 확장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현해낸 스토리와 캐릭터의 매력은 스크린에 그대로 담겨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등록제’(정부와 UN이 어벤져스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시스템)를 두고 찬성파(팀 아이언맨)와 반대파(팀 캡틴)로 나뉘어 싸우는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를 중심으로 한 ‘팀 캡틴’은 ‘윈터 솔져’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 ‘팔콘’ 샘 윌슨(안소니 마키), ‘호크아이’ 클린트 바톤(제레미 레너), ‘스칼렛 위치’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 ‘앤트맨’ 스콧 랭(폴 러드) 등이 포진됐다. 그리고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필두로 한 ‘팀 아이언맨’은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 ‘워 머신’ 제임스 로드(돈 치들), ‘블랙 팬서’ 티찰라(채드윅 보스만), ‘비전’(폴 베타니),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등이다.
이 중 단독 시리즈 주인공인 아닌, 팀원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쟁이’ 두 캐릭터가 있었으니, 서로 다른 팀에 소속된 앤트맨과 스파이더맨이다. 스포일러라 밝힐 수는 없지만 앤트맨은 이름을 무색케 하는 깜짝 변신으로 슈퍼히어로들의 전투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새로운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는 쉴 틈 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10대 철부지의 모습으로 등장해 ‘아빠’ 같은 토니 스타크와 코믹한 케미스트리를 자아낸다.
특히 판권이 소니픽쳐스에 있는 바람에 그동안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에 낄 수 없었던 스파이더맨의 신선한 등장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확인해야 할 이유를 안기며 영화 흥행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슈퍼히어로들의 연대와 화합으로 전 세계관객들을 한 곳에 그러모았다면, ‘시빌 워’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리고 우열을 가리기조차 힘든 히어로들의 싸움은 마블 특유의 유머를 머금은 채 시종일관 경쾌하고 ‘쿨’하기만 하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대체 무슨 고민들이 그리 많았던 건지 의아해질 정도로 캡틴 아메리카 대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대 호크아이, 스칼렛 위치 대 비전, 팔콘 대 워 머신 등의 대결은 신나고 화끈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빌 워’가 캡틴 아메리카의 솔로무비란 점에 다시 비춰 본다면, 정체성에 의문을 품을 만도 하다. 친구를 향한 뚝심어린 우정을 제외하고는 그의 활약에 대해 별로 이야기할 거리도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마블 스튜디오는 “‘시빌 워’는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 3단계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설명을 남겼다. 그런 세계관의 확장은 엄청난 볼거리나 무대, 세트가 아니라 개연성 강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통해 드러났고 이는 관객들의 마음을 관통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147분의 긴 러닝타임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명맥을 유지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조금 남는다. 아이언맨은 어쩌다 ‘똥고집 중늙은이’가 돼 버린 걸까. 12세관람가. 147분. 4월27일 전 세계 최초 개봉.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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