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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드라마 '부자 사랑' 지나치다

입력 : 2013-07-03 13:13:43 수정 : 2013-07-03 13: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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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갑부 등이 단골 소재로
美 소시민·중산층 위주와 대조
안일한 제작 관행 등이 원인
국내 굴지의 재벌, 최고의 호텔그룹, 식품 대기업, 두부 전문 중견기업, 중견건설사, 패션 회사…. 최근 브라운관에 넘쳐나는 재벌·갑부들이다. TV 앞 시청자의 휴대전화에는 중견기업 대표의 연락처 하나 있을까 말까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부유한 집안을 둘러싼 혼사와 복수극, 암투가 판을 친다. 해외 드라마와 비교하면 국내 드라마의 부유층 사랑은 유독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은 일차적으로 다양한 이야기 대신 안일한 갈등구조에 기대는 제작 관행에 원인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물질적 부’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욕망이 드라마에 투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굴지의 재벌 성진그룹이 배경인 SBS 월화극 ‘황금의 제국’.
◆세상의 절반이 갑부인 ‘드라마 세상’


재벌이나 부유층 집안이 국내 드라마의 단골손님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현재 방송 중인 KBS2 월화극 ‘상어’는 특급호텔 소유주 일가가 한 축을 담당한다. SBS 월화극 ‘황금의 제국’은 재벌 그룹이 주요 배경이다. MBC 주말극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에는 중견 건설사 사장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최근 종영한 MBC 주말극 ‘백년의 유산’에서도 식품 대기업·중견기업 일가가 결혼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SBS 주말극 ‘결혼의 여신’에는 재계 서열 10대 그룹의 2세이자 검사인 남성이 등장한다.

이뿐 아니다. MBC ‘오로라 공주’에는 유산을 물려받아 부유한 황마마 집안, 부도를 맞는 중견기업 일가가 나오고, SBS ‘못난이 주의보’ 역시 의류 대기업 집안이 한 축을 이룬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이에 대해 “1990년대 중반 이후 나타난 현상”이라며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같은 김운경 작가의 작품 이후로 서민 드라마가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드라마의 기형적인 부유층 사랑은 해외와 비교하면 극명해진다. 케이블 채널 OCN의 편성·기획 담당인 한지형 차장은 “내년에 미국에서 방송할 드라마 100편을 최근 보고 왔는데 소시민·중산층의 따뜻하고 소소한 가족 이야기가 많았고, 에너지가 사라진 사회나 환생한 마을 주민들 이야기 등 상류층과 거리가 먼 소재가 대다수였다”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 내 시청률 상위인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NCIS’ 모두 수사물이고 ‘뉴스룸’은 언론인을 다룬다”며 “여러 나라 프로듀서들이 유럽에 모여서 각국 드라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중국과 우리나라만 신분 상승 얘기가 많더라”라고 말했다.

특급호텔 소유주 일가가 나오는 KBS2 월화극 ‘상어’.
◆부유층, 비판하면서도 선망하는 양가적 감정

전문가들은 부유층의 잦은 등장을 작가·PD 등 제작자의 역량 문제로만 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부유함에 대한 선망과 빈부 격차에 대한 비판의식이 이런 현상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몰아친 신자유주의와 양극화가 TV에 투영됐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 기준으로 상위 10% 가구의 평균 소득이 하위 10%의 10.5배에 달했다.

윤석진 교수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옛말이 된 상황에서 갑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드라마를 통해 즐기려 하다보니 재벌이 일상처럼 보여진다”며 “일종의 관음증이 있다”고 밝혔다. 정덕현 문화평론가 역시 “시청자는 내 현실이 아니라 나보다 잘사는 사람을 TV에서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많다”고 말했다.

물질적 욕망의 이면에는 부유층에 대한 불신과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정 평론가는 “요즘 대중은 드라마를 통해 위안과 대리 체험을 원한다”며 “현실에서 양극화 문제를 피부로 느끼니 이런 소재의 사회극이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경제적 속물 근성이 응징당해서 ‘시적 정의의 세계’가 구현되기를 바라지만 자기 문제로 돌아오면 이기적 성향이 발동하는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벌가에 맞서는 힘없는 서민과 신데렐라 성공기가 동시에 인기를 얻는 건 이런 이유라는 설명이다.

중견 건설사 사장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MBC 주말극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고도 성장기를 뒷받침한 성공에 대한 열망 역시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성공에 대한 열망이 우리 내부에 자리 잡았다”며 “돈을 척도로 성공을 평가하니 부자가 자주 등장한다”고 밝혔다.

개인 중심인 서양과 달리 가족·집단 중심인 사회 특성도 한 요인이다. 가난한 인물과 부유층의 혼사가 단골 소재인 이유다. 공 평론가는 “외국은 개인의 심리가 위주이지만, 우리는 ‘너같이 미천한 애가 어떻게 우리 애를 사랑하니’ 하는 대사처럼 집안이 개인을 규정한다”고 진단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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