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르노삼성이 아니다” 기자가 최근 르노삼성의 한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르노삼성의 역할이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1994년 삼성자동차로 시작할 당시 닛산의 맥시마를 들여와 SM5를 만들었지만 삼성은 맥시마 개발비의 세 배에 이르는 자금을 투입해 완전히 새로운 차로 만들었다. 그 결과 삼성차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아직도 소비자들은 그때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르노삼성의 위상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27일 한국을 방문한 르노그룹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카를로스 타바레스 부회장은 “르노삼성이 향후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과 아시아·태평양 시장 거점 확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한국 시장에서 철수는 없다”는 말을 남겼다. 최근 불거진 ‘철수설’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르노삼성의 향후 전략을 엿보게 하는 중대한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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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한국을 방문한 르노그룹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그룹운영책임자(COO) |
따라서, 르노삼성의 내부에선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 취업해 일했는데 이제는 글로벌 차 회사의 생산공장으로 격하됐다는 불만이다. 최근 르노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르노삼성은 이제 신차 개발과 연구를 하는 독자적인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르노의 전략 차종을 엠블럼만 바꿔달고 생산하는 일종의 현지 생산기지”라고 말했다. 또, “현재 르노삼성은 르노의 입장에서 계륵 같은 존재”라며 “그동안 투자한 1조7000억원의 돈을 생각하면 철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차를 개발해서 시장을 공략할 정도로 권한과 역할을 주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르노삼성은 최근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를 기록했던 르노삼성차의 시장 점유율은 올 들어 4%대로 추락했다. 렉스턴W를 앞세워 실적 향상을 기대하는 쌍용차에 내수 4위 자리도 내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있다. 하지만, 르노그룹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신차개발에 투자하겠다는 말도, 르노삼성의 독자적 행보를 지원하겠다는 발언도 없었다. 다만, 현지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거점 역할론이 등장했다.
타바레스 부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적된 기존 모델의 디자인을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치 새로운 차를 만들어낼 뉘앙스로 들리지만 르노와 르노삼성의 관계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르노의 차를 기반으로 한국에서는 약간의 지역 선호도를 고려한 디자인 변경 차를 내놓는다는 전략이다.
르노그룹의 이 같은 결정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고 해마다 200여 종의 신차가 등장하며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활기차고 까다로운 자동차 시장인 한국에서 르노차를 엠블럼만 바꿔 내놓는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르노그룹 부회장의 방한의 참 뜻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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