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뽑고 가르치는 게 시급한 과제
美 관련법 개정 등도 풀어야 할 숙제
정부가 국내 업체 갈등 중재도 해야
한·미 관세 협상을 지휘했던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지난 3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협상 뒷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사실 조선이 없었으면 협상이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라며 ‘마스가’(MASGA)라는 협력 브랜드를 내세워 조선업 전반의 투자와 파트너십을 제안한 것이 이번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으로 긴급 공수해 간 마스가 모자도 공개했다. 붉은색 모자 위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배치하고 흰색 실로 마스가 문장을 새겼다. 마스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더한 것이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이다. 골프를 좋아하고 빨간색 모자를 즐겨 쓰는 트럼프 대통령 취향 저격인 셈이다. 치열했던 협상의 이면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노후한 미국 조선업에 약 1500억달러(약 209조원)를 투자해 K조선의 유전자(DNA)를 이식하는 게 목표다. 세부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편, 조선 관련 유지·보수(MRO) 등이 골자다. 성공한다면 한국은 안보와 산업 모두에서 새로운 기회 창출을, 미국은 대중국 견제의 지렛대를 확보하는 계기 마련이 가능하다. 만약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로 수렁에 빠져들 수 있다. 결과에 맞물린 풍경은 사뭇 다르다.

성공 전략이 궁금해진다. 마스가의 성공을 위해선 미국 현지에서 일할 ‘숙련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조선업 관련 인력은 100만명이 넘었지만 1980년대 20만명대로 급감했다.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 전문인력 배출은 중단된 지 오래다. 지난 1월 미 의회예산처(CBO)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조선소 용접공 소득이 패스트푸드점 종사자와 비슷해 많은 용접공이 이직을 결정했다. CBO는 경험 부족이 생산성을 저하하고, 사고를 증가시켜 작업 지연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 로스앤젤레스급 공격 잠수함 ‘USS 헬레나’의 수년간 이어진 정비 작업과 인명사고가 미 조선 산업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우리로선 인력을 뽑고 가르치는 게 가장 큰 도전이자 과제일 수 있다.
인력난을 해소하더라도 노후화된 미국 조선소에서 당장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하기는 무리다. 한국에서 제작한 선박 부품을 미국으로 가져가 조립하는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려면 미국 조선소의 문턱을 낮춰야 하는데 관련법 개정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은 1920년 연안 항구를 오가는 민간 선박은 자국 내에서만 건조하도록 한 ‘존스법’을, 1965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군함을 자국 조선소에서만 건조하게 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을 각각 도입해 자국 조선 산업을 보호해왔다. 경쟁을 차단해 미국 조선소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 장본인이다. 지난 2월 미 의회가 번스·톨레프슨 법의 예외를 인정하고는 동맹국 조선소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지난달 31일 ‘한·미 조선 산업의 협력증진 및 지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해 국내에서 미 군함 등을 건조할 수 있는 방산기지 특별구역을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함정 건조 동맹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전제조건은 또 있다. 미국 조선업 재건을 약속했지만 정작 국내에선 조선업 간판 주자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사업을 두고 수년째 다투고 있다. 장기간 상황을 조정·중재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도 함께 자리한다. 볼썽사납다. 얼마 전 새 정부가 K방산을 세계 4대 방위산업 강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도 넘은 업계 진흙탕 싸움이 계속돼 K방산이 더 성장할 호기를 걷어차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고도 마스가 프로젝트 성공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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