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0월 일본 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는 여러 나라에서 플리스 상품 출시 25주년을 기념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광고에서 패션 디자이너 케리스 로저스(당시 13세)가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애펠(당시 97세)에게 “스타일이 좋다. 제 나이였을 때는 어떤 옷을 입고 다녔어요?”라고 묻자, 애펠이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이 안 나”라고 말한다. 두 모델의 나이 차를 강조하려는 대화였는데, 한국에선 애펠 답변이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자막 처리됐다. 그러자 80년 전이면 일제 강점기인데, 종군 위안부와 강제동원 노동자를 조롱하는 광고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당시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급랭하던 시점이었다. 유니클로는 광고를 전면 중단했다.
2023년 12월에는 의류업체인 자라가 신제품 홍보 광고 캠페인에서 부러진 조각상과 팔이 없는 마네킹, 흰 천이나 비닐로 감싼 인물상 등을 등장시켰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스라엘의 폭격에 따른 가자 지구 희생자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BoycottZara’ 해시태그가 확산하는 등 파장이 커지자 자라 측은 자사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캠페인을 철회하고 광고를 삭제했다.
최근 미국에서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의 청바지 광고 하나가 ‘백인 우월주의’ 논쟁에 불을 붙였다. 광고에서는 할리우드 백인 여배우 시드니 스위니가 ‘시드니 스위니는 훌륭한 유전자(genes)를 지녔다’는 문구가 적힌 청바지 광고 포스터로 다가가 ‘genes’를 지우고 ‘jeans(청바지)’를 써넣는다. 두 단어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한 광고이지만, 은근히 금발의 파란 눈인 백인이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스위니가 공화당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까지 가세했다. 트럼프는 4일(현지시간) “청바지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잘하고 있다. 시드니!”라고 응원했다. 지금의 인구 추세라면 2050년쯤엔 백인이 미국의 소수 인종으로 전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스위니 청바지 광고 소동 와중에 아메리칸 이글 주가는 뛰었다지만, 그 이면에선 백인의 위기감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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