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 제보 문건에 날짜·장소 등 적혀
부산지검 “일방적 주장… 명예훼손 행위” ‘떡값에 향응, 성접대….’
‘검찰판 X파일’이 폭로돼 검찰에 일대 회오리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20일 MBC ‘PD수첩’이 보도한 부산지역 건설업체 전 사장 정모(52)씨의 검사 대상 로비 의혹은 기업인과 검찰, 경찰 등이 엮인 ‘토착형 비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정씨가 ‘PD수첩’ 제작진한테 건넨 문건에는 검사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날짜와 액수, 장소, 수표와 현금 번호까지 적혀 있어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 특히 지난해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스폰서’ 문제로 사퇴한 지 1년도 안 돼 검찰내 감찰 책임자까지 명단에 올라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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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접대와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정모(52)씨의 진정서. 정씨는 진정서에 접대와 향응을 제공했다는 전·현직 검찰 간부들의 실명을 적어 파문이 일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
정씨는 20대 나이에 건설업체 경영을 물려받은 1984년부터 90년까지 진주지청 검사들을 상대로 매달 100만원씩 후원했으며 1주일에 한번씩 회식자리를 마련해 줬다고 폭로했다. 그는 “2,3차는 물론이고 성접대까지 해줬다”면서 “인사발령이 나면 서울로 올라가 1주일씩 호텔에 머물면서 검사들을 접대했고 쥐치포 선물을 하면서 그 안에 30만원씩을 담아 줬다”고 주장했다. 정씨가 작성한 A4 11장짜리 문건에는 전·현직 검사 57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정씨는 “성접대를 한 검사만 100여명이고 그냥 접대만 한 검사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이 될 것”이라며 “검찰에 보험을 들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A부장검사는 정씨와 술자리에서 동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정씨는 85년 9월 진주지청 소년선도위원을 맡으면서 검찰과 인연을 맺은 뒤 이른바 ‘스폰서’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부산·경남지역에서 검찰은 물론 경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후문이다. 유흥업소 단속을 나간 검사가 업소 주인한테 폭행을 당한 사건 때문에 경찰이 궁지에 몰리자 정씨가 해결해줬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씨는 “진주지청에 6호 검사까지 있었는데 내가 7호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검찰, 알면서도 그냥 덮었나=이날 PD수첩 방송보도가 예고되자 대검찰청은 “방송을 본 뒤 대응 여부를 결정하라”는 김준규 검찰총장 지시에 따라 대응을 자제했다. 대다수 검사는 정씨가 현재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제보의 의도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1980년대부터 정씨의 집중적 로비 대상이 된 부산지검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부산지검은 “MBC가 방영한 내용은 가명으로 처리된 제보자의 신뢰성 없는 일방적 주장을 나열하면서 미리 정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보도자 의도에 맞게 임의로 편집한 선정적 화면과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으로 일관했다”며 “방송의 공정성을 해치는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서 “정씨가 검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정황을 검찰이 알고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 전망이다. 지난해 정씨가 향응과 성을 접대한 검사들을 수사해 주도록 부산지검에 진정을 냈으나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1990∼2000년대 부산·경남 지역에서 근무한 검사들에 대한 대규모 감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검찰 내부감찰 책임자인 한승철 감찰부장이 명단에 오름에 따라 감찰이 제대로 될지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이에 따라 야당과 시민사회들은 특별검사 임명을 통한 진상규명과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정모씨가 주장한 검사 로비에서 폭로까지 |
-1984년 3월 정모(52)씨, N건설 대표이사 취임 |
-부산·울산·진주 지역 검사와 친분 맺어 |
-법무부 갱생보호위원과 검찰 소년선도위원으로 각각 활동 |
-2004년까지 지역 검찰 스폰서 역할 ●체육대회·등반대회 등 공식 행사 후원 ●회식·환영식·송별식 등 비용 부담 ●촌지 전달 ●향응 제공 및 일부 성접대 ●전별금으로 순금 마고자 단추 선물 |
-2006년 검찰, 정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
-2008년 8월 검찰, 정씨를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 |
-9월 법원, 정씨에 대한 구속 집행정지(1심 진행 중) |
-2009년 3월 검찰 고위간부 등에게 향응 제공 |
-2010년 2월 부산지검에 전·현직 검사 100여명에 대한 진정서 제출 |
-4월 검사들에게 향응·접대한 사실 폭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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