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28년 검사 인생은 굴곡 그 자체였다.
9수 끝에 1994년 늦깎이(31살) 검사가 된 윤 총장은 대구지검에서 첫발을 뗐다. 이후 서울지검 등을 거쳐 부산지검 검사로 있던 2002년 초 사표를 냈다.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는 불과 1년 만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윤 총장이 당시 주변에 복귀 이유로 전한 ‘자장면 일화’가 아직까지 회자된다. “검찰청을 들렀을 때 자장면 냄새를 맡고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검찰 조사실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후 대검 검찰연구관과 대검 중앙수사부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권 등 윗선 눈치를 보지 않고 범죄 혐의가 있으면 독하게 수사하는 ‘특수통 강골 검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 2013년 박근혜정부 초기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다 제대로 찍혔다. 검찰 지휘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게 컸다. 청와대 등 여권의 격노에 법무부는 윤 총장을 수사팀에서 배제했고 윤 총장은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한직으로 분류되는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됐다.

하지만 2017년 터진 박근혜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에 발탁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검 수사팀을 이끌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등 박근혜정부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단죄했다.

문재인정부는 윤 총장의 공을 높이 사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 발탁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최고의 검사로서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치켜세우며 검찰총장으로 앉혔다.

더불어민주당과 여권 지지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검찰 수장이 된 그는 거침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별히 아끼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 관련 비리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의 허니문은 끝나버렸고, 여권은 노골적으로 윤 총장 퇴진을 압박했다. 급기야 조 전 장관의 대타로 강력한 ‘추미애 카드’를 내밀었다. 추 전 장관은 예상대로 인사권과 지휘권을 남발하며 윤 총장을 고립시키고 쫓아내려는 일에 주력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지휘권 박탈과 징계를 밀어붙이기도 했다. 윤 총장은 절차적 부당성을 지적하며 법적 대응을 통해 명예회복을 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월성 원자력발전소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 정권이 부담스러워하는 수사를 꿋꿋이 밀어붙였다. 차기 대선의 야권 유력 주자로 떠오른 배경이다. 이에 여권이 직접수사권 자체를 빼앗아 검찰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드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추진하자 윤 총장은 항의 표시로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그렇게 28년 검사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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