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30)씨는 출근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나설 때마다 발이 빨라진다.
지각해서가 아니다. 화장실이 급해서도 아니다. 저 멀리 전단 나눠주는 아주머니 틈을 재빨리 빠져나가기 위해서다.
이른 아침부터 전단 나눠주는 아주머니들이 측은하지만, 전단을 받아줄 마음은 없다.
관심 없는 광고 내용도 문제지만 곧장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종잇장에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매몰차게 뿌리치는 게 마음에 걸려 아주머니들에게 간단한 목례 정도는 한다. 속으로 ‘고생하십니다’라고 말하는 자신을 아주머니들이 알아주기를 김씨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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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길가에 떨어진 전단. |
지하철역을 빠져나온다고 해서 ‘전단 수비진’을 뚫은 건 아니다.
밖으로 나와 회사에 닿기까지 곳곳에 전단 나눠주는 이들을 마주친다. 한 명을 피하면 기다렸다는 듯 뒤에서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일까?’라는 생각이 김씨 머릿속에 스칠 때도 있다.
김씨는 이따금 전단 몇 장씩 받아들고 앞에서 오는 직장인들을 본다. 이들이 전단을 고이 모셔가느냐? 그렇지도 않다. 대부분은 받아든 전단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다. 그런 모습을 보니 김씨는 ‘이건 종이낭비의 현실이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점심시간.
회사 동료들과 밥 먹으러 나가는 김씨는 이번에 ‘식당 전단’을 마주한다. 아침에는 만나는 전단은 대개 휘트니스 클럽에서 나온다. 아침과 점심에 받는 전단 내용까지 외울 정도다.
“여기 앞에 좀 서봐”
밥 먹으러 가는 동료에게 김씨가 말했다. 그는 동료를 방어막 삼아 전단 수비진을 다시금 뚫었다. 김씨 동료의 손에는 예상대로 전단 두어장이 들려있다. 이들이 받은 전단의 종착지는 식당 쓰레기통이다.
몇 차례 목례와 은폐를 거친 김씨의 점심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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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인도에 떨어진 전단. 펴 보니 휘트니스 클럽에서 나온 광고였다. |
‘자, 이제 퇴근해볼까?’
오후 7시쯤, 광화문역에 다다른 김씨는 고개를 젓고 만다.
그의 눈이 미친 출구에서는 한 학생이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세계적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상대팀 진영을 돌파하듯 ‘전단 수비진’을 따돌려온 김씨에게 닥친 위기순간이다.
김씨는 결국 전단을 받았다. 그가 손에 든 전단에는 ‘XX 휘트니스 클럽. 신규 등록 30% 할인. 회원 대모집’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김씨는 승강장 쓰레기통에 전단을 버린 뒤 전동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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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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