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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사건은 법정에서 어떻게 묻혀버리는가

관련이슈 충격실화 '도가니 신드롬'

입력 : 2011-09-27 11:11:43 수정 : 2011-09-27 1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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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아 성폭행 사건… 공지영 동명 소설 토대
기득권자 위선·우리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 그려
증인으로 나선 아이의 재치있는 입증 “극적 반전”
‘도가니’는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성폭행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토대로 쓴 공지영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는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로 부임한 강인호(공유)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아동 성폭행 사건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풀어 나간다. 2000년부터 5년 동안 이 학교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청각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폭행을 저질렀고, 학교 근무자들은 이를 외면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건의 가해자들이 대부분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지금도 교단에 선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솜방망이 처벌과 사회의 무관심 탓에 사건은 금방 잊혀지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방대한 내용을 2시간 안에 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황동혁 감독은 소설이 가진 문제의식과 흐름은 건드리지 않은 채, 인물에 대한 사연을 과감히 잘라낸 뒤 디테일한 것들을 바꾸어가면서 ‘사건’을 추려냈다. 영화는 감독의 의지대로 초반부 빠르게 전개되다 법정 장면이 등장하면서 평속을 찾는다. 영화의 핵심이 ‘법정장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드러난 범죄자의 악행에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묻히는가’를 담아내는 데 비중을 둔 점이 강점이다. 영화는 소신대로 쭉쭉 밀고 나간다. 주변 영향력에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촬영해낸 고집이 고맙다. 할리우드 영화에 한 치도 밀리지 않을, 팽팽한 법정 대립신이 이 영화에서 살아난다. 연출의 힘이다. 이 대목에선 가진 자들과 기득권자들의 위선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현주소와 암울한 자화상을 그려낸다.

교장을 감싸는 무지한 신도들은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구명운동에 나선다. 교장실에 붙어 있는 흔하디흔한 청소년선도위원 임명장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성치 않은 아들(아이들) 데꼬 어른들이 머하는 짓이꼬?”라고 일침을 가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말에 뼈가 있다.

영화 속에서 해당 구청이나 시청 담당계는 사건에 대해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현실에서 일반인들도 익히 겪어본 일이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 맨 처음 나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란 행동으로 옮기기에 두려운 일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겁이 없는 사람은 용기를 실천할 수 없다. 용기는 오히려 겁이 많은 사람이 실행하는 것이다. 영화는 겁도 많고 약점도 많은 주인공이 이 일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섣부른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차분히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증인으로 나선 장애아의 재치 있는 범죄 입증이 극적 반전을 이끌며 객석의 눈과 귀를 앗아간다.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도 얼굴에 온통 짜장면을 묻히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 

시사회 이후 일부에서는 보기에 불편한 장면들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주제, 내용, 대사, 영상 표현에서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성폭행 등의 묘사가 구체적이며 직접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접착 테이프로 손발을 묶어놓고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장면, 화장실 성폭행 장면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실제 사건에서 벌어진 아동 성폭행의 수위가 매우 높았다는 수사 기록을 고려하면 ‘표현의 수위조절은 적절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아직도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범죄라는 인식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먼 이야기쯤으로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문제라는 얘기다. 사회적 고발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의 ‘공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이보다 더한 일이 생겼을 때 방어체계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깐. 공지영 작가는 이를 ‘둥지’라고 표현했다. 모두가 알아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행은 합의와 상관 없이 처벌이 가능하다.

학원비리, 검찰·경찰의 비리, 법조계의 전관예우 등은 이미 우리가 신문 보도나 방송 뉴스에서 많이 보아온 소재들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란 말이다. 다만, 그런 요소들이 하나의 도가니에 모이다 보니 좀 더 세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일 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라는, 범죄에 비해 너무도 가벼운 처벌을 내린 법정의 판결 뒤로 하얗게 변하는 화면처럼 관객의 머릿속도 마냥 하얗게 변할 따름이다. 판결 결과를 놓고 ‘사필귀정’이란 말을 쓰는 쪽은 오히려 가해자들이다.

다행히 수확이 하나 있다면 ‘장애인들도 타인과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와 평등이 있는가? 전 국민이 챙겨 봐야 할 영화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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