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사랑으로 서글픈 사나이가 연인을 찾아왔다가 궂은 비만 보고 울며 간 곳이 삼각지 로터리다. 요절한 인기 가수 배호의 유행가 ‘돌아가는 삼각지’의 내용이다. 삼각지 로터리에서 내게도 궂은 기분이 일어났다. 국방홍보원이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추진한 전쟁기념관 방문길의 삼각지에서 그 노래보다 전쟁기념관의 존재감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함을 잊고 사는 죄송함이 반추되었다.
기념관에는 외국인들이 꽤 있었다. 네덜란드 국방사령관과 사관학교 장교단 50여명이 네덜란드 전사자들께 헌화하고 활약상을 담은 전시실 관람과 전략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당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이역만리 세계 최빈국을 공산세력의 침략에서 지키려고 참전한 네덜란드는 6·25전쟁에 5322명의 병력을 파병했고, 125명이 전사하고 645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전쟁기념관에는 나라별로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전사자명비’를 영구 전시하고 있다.)
외국 민간인 방문자들은 6·25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가족과 친지들이 많다고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이 생면부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목숨을 걸고 공산세력을 막아낸 것에 자부심이 크다는 설명이다. 세계 10대 교역국가로 발전하고 음악·음식·문화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매력 국가가 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스탈린으로부터 받은 최신식 소련제 무기와 모택동의 협력을 얻어 일으킨 6·25 침략은 냉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전쟁으로 대한민국이 잊어서는 안 될 살육과 지옥 고통을 겪게 했다. 3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한국군과 유엔군(4만여명의 전사자) 사상자는 약 78만명, 민간인 피해자(사망, 납치, 학살, 행방불명자)는 약 100만명에 이른다.
6·25전쟁을 과거로 치부하거나 무슨 해방전쟁 비스름한 냄새를 피우는 정신 나간 이들도 간혹 있지만, 남북한 중 어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땅인가는 규명된 지 오래다. 8·15 광복에서 6·25 침공, 낙동강 방어, 인천상륙작전, 서울수복, 1·4 후퇴를 거치며 북한 공산체제를 떠나 남한으로 월남한 사람이 약 480만명으로 당시 북한 인구의 30%가 넘는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6·25전쟁은 단순 기록과 기억의 공유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대한민국 공동체의 공생적 삶과 미래를 위한 유비무환을 국민에게 일깨우고 교감하는 ‘스토리 텔러’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전쟁기념관이 전국에 산재한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다친 분들을 기리고 배우는 ‘보훈 순례’의 출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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