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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성취만 강요받는 세상… 다른 가치관 설 자리 잃어”

입력 : 2011-04-12 11:20:21 수정 : 2011-04-12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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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카이스트(KAIST) 학생의 잇단 자살을 두고 전문가들은 ‘숨 막히는 경쟁사회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공과 성취만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다른 가치관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카이스트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성과지상주의’에 내몰린 학생들의 심리적 압박을 치유해 줄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카이스트’는 경쟁 위주 한국사회의 축소판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단언했다.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이 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을 강요하는 것과 개인이 가진 바람은 다르다. 자아를 실현할 통로가 경쟁사회 속에서도 공존한다면 극단적인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어려서는 대학 진학을, 이후엔 사회적 성취와 성공을 위해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우리 사회는 개인이 숨 쉴 공간조차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징벌적 장학금 제도로 상징되는 ‘서남표식 개혁’은 이를 더욱 압박했다는 지적이다.

윤대현 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은 “사람들은 저마다 인생을 사는 이유, 다시 말해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있다. 자살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할 때 택하는 극단적 방법”이라며 “우리 사회의 성공, 성취 중심주의가 극명한 카이스트에서 발생한 자살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취만을 강요하다 보면 가치관의 균형이 깨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여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산업사회의 이른바 ‘속물 가치관’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취약해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무너지기 쉽다”며 “철학과 인문학 교육을 도외시하고 실용적 교육만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이 나름의 다른 가치관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11일 대전 카이스트(KAIST)의 한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잇단 자살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교수와 학생들이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사회안전망의 부재…획일적·징벌적 교육도 문제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현재 카이스트가 처한 상황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패자는 일어설 수 없다’, ‘경쟁에 실패하면 복구 불가능하다’고 길들여지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심리적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방증한다는 논리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희소하다. 경쟁에서 수많은 탈락자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전통사회에선 가족과 친족, 지역사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지만 요즘은 모두 ‘자기 책임’이니 학생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암담했겠느냐”며 “경쟁이 필요하다는 걸 넘어서서 경쟁을 통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신념이 단기간에 한국 사회에 몰려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창의성’을 강조하면서 ‘획일성’을 고집하는 카이스트의 교육정책에 대한 질타도 나왔다. 배규한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로봇 영재’ 조모군의 자살을 언급하며 “뽑을 때는 맞춤이고, 입학하면 획일교육을 하니 누가 따라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조기진학, 엘리트 교육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문세계에만 갇히다 보니 외부 충격을 견디는 힘이 약하다”며 “등록금을 내는 사람을 낙오자로 만드는 네거티브식 경쟁은 학우관계조차 어긋나게 만들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베르테르효과 우려…국가차원 대책 필요

카이스트 측은 일단 징벌적 등록금제 폐지, 영어강의 개선, 상담프로그램 마련 등 대책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대안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조근호 을지병원 교수(신경정신과)는 “문제가 있을 때 쉽게 전문가 치료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며, 특히 학내에서 1차적으로 고위험군을 가려내 전문가에게 연계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대책”이라며 “카이스트를 폐지하거나 엘리트 교육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과잉 스트레스에 노출된 인력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종의 ‘베르테르효과’에 대한 우려도 컸다. 윤대현 교수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은 이제 일종의 ‘사회적 자살 유가족’이 됐다”면서 “카이스트에 소속됐다는 것만으로도 또다른 ‘고위험군’이라는 의미에서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해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를 치료하고 재발방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태영·이유진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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