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찰청 수뇌부는 지난 2일 가진 언론간담회 석상에서 용의자 김길태(33·사진)씨의 사람을 죽이지는 않은 과거 범행전력을 거론하며 “이양의 얼굴을 공개하고 실종 나흘(지난달 27일) 만에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은 적절한 시점인 것으로 판단한다”며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를 통한 시민들의 제보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의 기대와 달리 이양은 실종 11일 만에 자신의 집 인근 주택 보일러용 물탱크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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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양 시신이 유기됐던 최모씨 집 보일러용 물탱크를 7일 새벽 부산경찰청 여중생 실종사건 수사본부 수사관들이 정밀감식을 하기 위해 옮기고 있다. <부산경찰청 실종사건 수사본부 제공> |
경찰은 이양 시신을 수습했지만 공개수배한 용의자를 눈 앞에서 놓치는가 하면, 그동안 잘못된 판단과 형식적인 수색으로 사건을 장기화시켰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양 실종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경찰청 실종아동수사본부는 6일 오후 9시23분쯤 실종된 이양의 집에서 직선거리로 50여m(도보 100여m) 떨어진 사상구 덕포1동 권모(66)씨의 다세대주택 보일러실 위에 놓인 물탱크 안에서 이 양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양의 시신이 발견된 보일러용 물탱크는 높이 1.25m, 둘레 2.75m, 폭 0.88m 규모인데 경찰 수색 당시 물탱크 뚜껑이 벽돌로 눌려진 상태였다.
또 물탱크 내부는 물 대신 검은색 비닐봉투 더미와 스티로폼 조각들로 채워져 있었고 깊이 1.3m의 물탱크 바닥에 엎드린 채로 발견된 이양의 시신 위엔 횟가루가 덮여져 있어 쓰레기가 들어있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위장된 모습이었다.
이양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물건 포장용 검은색 비닐봉투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나일론끈으로 손과 발이 결박당한 상태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울혈 현상을 보인 점으로 미뤄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숨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양을 최초 발견한 경찰은 “물탱크 안에 뒤엉킨 비닐봉투 등을 헤치고 나니 이 양의 오른쪽 발목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물탱크는 기름통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권씨의 다세대주택 모서리 보일러실 위에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7일 오전 물탱크에 대한 현장감식을 한 뒤 물탱크를 통째로 뜯어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 정밀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이양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다.
김희웅(사상경찰서장) 수사본부장은 “이양이 성폭행당한 흔적이 있고, 범행장소는 시신이 유기된 장소 인근지역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동안 부산에서 단일사건으로는 최대규모인 2만여명과 헬기, 수색견 등을 동원해 덕포동 일대를 수차례 뒤졌으나 허탕을 쳤고, 지난 3일 새벽엔 이양 집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빈 집을 수색하다 용의자 김씨를 눈 앞에서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은 특히 지난달 24일 오후 숨진 이양 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력이 나쁜 이양이 안경과 휴대폰을 집에 두고 사라진 사실과 집 화장실 바닥에서 외부인 운동화 발자국 3∼4점을 발견했으면서도 단순 가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채 즉시 경력 총동원 및 수색에 들어가지 않은 채 다음날부터 수색을 시작하는 바람에 범인에게 시신은닉 등의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수사본부 및 부산경찰청 수뇌부는 이외 근거도 없이 용의자 김씨의 살인전과가 없는 과거 성폭행 범행으로 미뤄 이양이 살아있을 것으로 보고 주택가 물탱크와 정화조 등을 초기 수색대상에서 제외한 채 폐·공가만 집중적으로 수색했던 것으로 드러나 사건을 종합적으로 인지·분석하는 사고가 유연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편,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던 이양은 지난달 24일 오후 7시쯤 부산 사상구 덕포1동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38)와의 전화통화를 끝으로 실종됐다.
부산= 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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