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라쏘 품종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동부 코르토나가 고향/강렬한 미네랄·복합미·숙성잠재력 뛰어나/비에티 ‘싱클 크뤼 바롤로’ 빚는 솜씨로 빼어난 티모라쏘 선보여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는 레드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들이 유명합니다. 네비올로(Nebbiolo) 로 만드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Barolo), ‘와인의 여왕’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영할 때 마시기 좋고 10년 이상 숙성하면 바롤로 뺨치는 폭발적인 잠재력까지 지닌 바르베라(Barbera), 과일향이 풍부하고 탄닌이 부드러워 가볍게 즐기기 좋은 돌체토(Dolcetto)가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레드 품종입니다.
이런 레드 품종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피에몬테는 빼어난 화이트 와인도 생산됩니다. 그중 하나가 ‘화이트 바롤로’로 불리는 티모라쏘(Timorasso) 랍니다. 화이트 바롤로라는 별명처럼 바디감이 좀 있고 과일과 꽃향, 복합미, 미네랄이 뛰어나며 숙성잠재력까지 지닌 매력적인 품종입니다. 티모라쏘의 고향 피에몬테 동부 알레산드리아의 토르토나(Tortona)로 떠납니다.



◆피에몬테의 화이트 품종
▶코르테제(Cortese)
코르테제는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으로 가비(Gavi) 마을이 가장 유명합니다. 레몬, 라임, 자몽의 섬세한 시트러스 과일로 시작해 청사과, 배, 흰복숭아, 멜론의 과일향과 아카시아의 흰꽃향, 허브향이 더해집니다. 온도가 오르면 구운 아몬드도 살짝 느껴집니다. 젖은 자갈, 부싯돌의 미네랄과, 솔티한 미네랄이 돋보입니다. 선명한 산미와 풍성한 미네랄 덕분에 구조감이 뛰어납니다. 오크 숙성을 거의 하지 않고 퓨어한 스타일로 만듭니다.

가비 마을을 중심으로 11개 마을에서 코르테제를 생산하는데 보통 ‘가비 디 가비(Gavi di Gavi)’로 부르는 가비 마을의 코르테제가 유명합니다. 가비 마을의 코르테제가 반드시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키안티 클라시코처럼 코르테제의 상징으로 통합니다. 이 지역의 독특한 지형과 미세기후(microclimate) 때문입니다. 리구리아 해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아펜니노 산맥의 눈이 만나는 곳으로 추운 겨울, 덥고 바람 많은 여름이 특징입니다. 해발고도가 높고 경사지 포도밭, 풍부한 일조량, 이회토(marl), 석회질(calcareous), 점토질(clayey) 토양이 위대한 가비 와인을 만들어 냅니다.


▶아르네이스(Arneis)
배, 복숭아, 살구, 사과, 허브, 흰 꽃이 특징이며 부드러운 과일 중심의 팔레트가 두드러집니다. 은은한 아몬드 등 너티한 뉘앙스도 느껴지며 상쾌하면서도 약간 고소하고 미네럴리티한 여운이 돋보입니다. 아르네이스 와인은 가성비가 좋고 마시기 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작은 말썽꾸러기(Little Rascal)’ 별명을 지녔을 정도로 병충해에 약해 재배가 아주 까다롭습니다. 워낙 향기가 좋아 해충이 좋아합니다. 이에 예전에는 해충에서 네비올로를 보호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네비올로 밭에 심던 품종이었습니다. 또 시라에 비오니에를 섞으면 복합미가 좋아지듯, 네비올로에 좀 더 부드러운 과일향과 꽃향기를 넣어주기 위한 보조 품종으로 사용됐습니다. 네비올로의 인기가 높아지자 생산자들이 아르네이스를 모두 뽑아버리고 네비올로를 심으면서 20세기 초에 아예 멸종되다시피 합니다. 1967년 이를 복원한 인물이 현재 비에티(Vietti)의 오너이던 와인메이커 알프레도 쿠라도(Alfredo Currado)입니다.

로에로(Roero)와 랑게(Langhe)가 아르네이스 대표 산지입니다. 피에몬테 알바(Alba)의 북서쪽 언덕의 작은 와인 산지, 로에로 아르네이스 DOCG는 특유의 모래와 이회토(marl)가 섞인 토양이 구조감과 복합미가 뛰어나고 미네랄이 풍성한 와인 스타일을 만들어냅니다. 또 로에로 아르네이스는 미디엄 바디, 깔끔하면서도 구조감 있는 질감, 상쾌하고 명료한 산도, 솔티한 미네랄이 어우러진 긴 여운이 특징입니다.
랑게 아르네이스 DOC는 로에로 보다 훨씬 넓은 지역입니다. 살짝 크리미한 느낌이 더해진 과일 중심의 상큼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라이트~미디엄 바디로 산도는 로에로 보다 둥근 편입니다.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으로 피니시에 허브와 너티 노트도 느껴집니다.

▶티모라쏘
티모라쏘는 아르네이스와 더불어 요즘 피에몬테에 많이 재배됩니다. 와인은 짚색에서 금빛이 도는 진한 색을 띠며 복숭아, 부서진 사과, 열대과일, 아카시아, 산사나무, 말린 허브, 꿀이 어우러져 긴 여운을 남기는 풀바디 와인으로 복합미가 뛰어나고 석영, 플린트 느낌의 미네랄이 도드라집니다. 샤르도네처럼 향긋하면서도 리슬링의 패트롤향, 짭조름한 미네랄, 허브향이 느껴져 마치 샤르도네외 리슬링을 섞은 느낌입니다. 특히 산도가 높아 숙성잠재력이 뛰어나며 10~15년도 잘 버팁니다. 티모라소는 원래 신선하고 가볍게 먹는 스타일 아니고 숙성돼야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나는 품종입니다. 이에 피에몬테의 전통적인 화이트 와인 가비를 만드는 코르테제 품종과 아르네이스 품종보다 요즘 더 떠오르고 있습니다.

티모라쏘를 레이블에 표기하려면 최소 85% 이상 사용해야합니다. 나머지는 베르멘티노(Vermentino), 파보리타(Favorita), 모스카토 비앙코(Moscato Bianco) 등을 블렌딩합니다. 콜리 토르토테시(Colli Tortonesi) DOC는 최소 95% 티모라쏘를 사용해야합니다. ‘Derthona(데르토나)’가 적혀 있으면 티모라쏘 100% 와인입니다. 데르토나는 토르토나 마을의 고대 로마시대 이름입니다. 생산자들은 티모라쏘 100%를 사용하는 데르토나가 떼루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이름에 임팩트도 있다는 이유로 데르토나를 공식 DOC 이름으로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코르토나 인근 몬페라토(Monferrato)에서도 티모라쏘가 생산되는데 몬페라토 비앙코 DOC로 표기합니다. 몽페라토 비앙코 DOC는 티모라쏘는 물론 다양한 화이트 품종에 적용되기 때문에 몬페라토 비앙코 표기로는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구릉으로 이뤄진 콜리 토르토네시 DOC 포도밭은 석회암, 점토, 사암 기반의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입니다. 또 해발고도가 높은 편이며 바닷바람의 영향을 받아 일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로 포도가 산도를 잘 움켜집니다. 티모라쏘는 중세때부터 재배된 토착 품종이지만 재배하기 까다롭고 생산량도 많지 않아 필록세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습니다. 이를 1980년 몬레알레(Monleale) 마을 출신 농부 발터 마싸(Walter Massa)가 복원 뒤 생산량이 늘고 있습니다. 피에몬테 외에서도 티모라소를 재배하려는 시도가 많았지만 굉장히 예민하고 질병에 취약하며 고르게 익지 않아 결국 재배에 실패했습니다. 이회토가 풍부하고 높은 고도에 일조량이 좋은 피에몬테 테루아에서만 잘 자라는 특별한 품종입니다.

▶나쉐타(Nascetta)
레몬, 감귤, 청사과, 자몽에서 열대과일까지 풍성한 과일향이 돋보입니다. 아카시아, 아이리스 등 흰꽃향과 생강, 세이즈, 로즈마리의 허브가 매력적입니다. 숙성되면 꿀, 리슬링 스타일의 미네랄이 더해지며 복합미가 발달합니다. 상큼한 산미가 돋보입니다. 베르멘티노 향도 있고 아르네이스와도 약간 비슷합니다.
랑게(Langhe)과 로에로(Roero)에서 많이 재배되는 토착품종으로 특히 바롤로 11개 마을중 하나인 노벨로(Novello)를 중심으로 생산됩니다. 19세기에는 널리 재배됐으나 20세기 중반에는 거의 멸종 위기에 몰렸다가 1990년대 중반 엘비오 코뇨(Elvio Cogno) 등 피에몬테 생산자와 토리노 농과대학의 협업으로 복원됐습니다. 2010년대 초에 랑게 DOC의 서브 지역으로 인정된 나쉐타 델 코뮌 디 노벨로(Nascetta del Comune di Novello)는 나쉐타 100%로 만들며 랑게 DOC는 최소 85% 사용합니다.


◆‘아르네이스 아버지’와 ‘티모라쏘 장인’ 비에티
잊혀 가던 아르네이스를 복원하고 티모라쏘로 최고의 화이트 바롤로를 선보이는 와이너리가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생산자중 하나인 비에티(Vietti)입니다. 한국을 찾은 우르스 베터(Urs Vetter) 비에티 수출·세일즈 이사를 만났습니다. 비에티 와인은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19세기 말 카를로 비에티(Carlo Vietti)가 피에몬테의 랑게(Langhe)의 중심부, 중세 마을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to) 언덕에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 비엘티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비에티 가문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600년대부터 카스틸리오네 팔레토에 정착해 거주했고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와인을 조금씩 생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셀러를 뒤져보면 1830년대 병입된 와인들이 발견됩니다. 1800년대에는 유리가 매우 비쌌을 텐데 병입까지 한 점으로 미뤄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와인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카를로의 아들 마리오 비에티(Mario Vietti)는 작은 농장으로 가족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 미국으로 이주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엔지니어링 학위를 받고 사업가로 성공합니다. 고향인 카스틸리아노 팔레토 인근 유명한 바롤로 마을인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출신 아내도 미국에서 만납니다. 마리오는 고향에 남아있는 동생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하고 필록세라로 포도밭이 황폐화되자 미국 생활을 접고 1917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와이너리를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1950년대 말, 마리오의 조카사위이자 루치아나 비에티(Luciana Vietti)의 남편인 알프레도 쿠라도(Alfredo Currado)가 와이너리에 합류, 포도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 비에티 와인은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양조학자이자 예술 애호가인 그는 비에티 가문의 깊은 경험에 자신의 창의적 직관을 더해 예술과 문화, 와인의 공통분모를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인 역작이 멸종되다시피 한 아르네이스(Arneis) 복원으로 그는 1967년 피에몬테 최초로 아르네이스 품종 와인 양조에 성공합니다. 그가 ‘아르네이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랍니다. 또 지역 예술가들을 후원하기 위해 1974년부터 비에티 와인에 아트 라벨(Art Labels)을 담기 시작합니다. 앞서 그는 1961년 최초의 바롤로 크뤼(Cru) 중 하나인 로케 디 카스틸리오네(Rocche di Castiglione)를 선보입니다. 비에티 와이너리는 2016년 카일 크라우스(Kyle Krause) 인수됐고 비에티 일가는 떠났지만 카일은 콜리 토르토네시(Colli Tortonesi) 포도밭을 매입해 티모라소(Timorasso) 와인을 생산하는 등 비에티의 선구자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에티 티모라쏘
비에티 콜리 토르토네시 티모라쏘 데르토나(Colli Tortonesi Derthona)는 티모라쏘 100%입니다. 레몬 껍질, 청사과, 잘 익은 배, 복숭아로 시작해 아카시아, 목련, 산사나무향이 더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말린 망고 등 열대과일 노트도 감지됩니다. 선명한 허브 뉘앙스에 과일과 향신료가 겹겹이 쌓인 듯한 아로마가 돋보이고 입에서는 타임과 세이지의 허브도 잘 느껴집니다. 입에 꽉 차는 부드럽고 풍부한 과실미와 신선한 산도와 잘 어우러지고 미네랄도 돋보입니다. 숙성되면 야생 꿀, 밀랍, 석회 미네랄이 복합미를 더합니다.

콜리 토르토나 DOC에서도 주로 몬레알레(Monleale)에서 재배된 과일을 사용합니다. 포도즙이 자연 순환하면서 효모와 잘 접촉하는 계란형 세라믹 탱크에서 95% 발효하고 나머지는 오크통,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합니다. 젖산 발효는 하지 않고 10개월 동안 효모 앙금 숙성을 통해 크리미한 질감을 만듭니다. 침용과정을 통해 껍질의 페놀릭, 탄닌 성분을 더 추출해서 구조감을 증폭 시키는 덕분에 10~15년 장기 숙성이 가능합니다. 티모라쏘가 ‘화이트 바롤로’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또 세라믹과 배럴 숙성과정에서 미세한 산소 접촉을 통해 마이크로 옥시데이션이 일어나도록 해 복합미를 높입니다. 화이트 와인인데 어깨도 있고 근육도 좀 있는 스타일입니다. 너무 강하다기보다는 볼륨감과 밀도 있는 구조감을 지녔습니다. 루아르 슈냉블랑과도 좀 비슷하고 미네랄은 샤블리와도 닮았습니다. 숙성잠재력은 10~13년입니다. 비에티 티모라쏘는 4만병 정도 소량 생산됩니다.

“티모라쏘는 매년 생산되지 않습니다. 꽃이 피어 열매 맺는 시기에 조금만 비가 오면 열매가 우수수 다 떨어질 정도로 예민해 수확량이 아주 적어요. 그래서 2016년 티모라쏘 포도밭은 10ha였는데 계속 늘려가고 있답니다. 비에티는 티모라쏘에 있지 않는 와이너리 치고는 굉장히 투자를 많이 해요. 콜리 토르토네시는 알바에서 한 100km 정도 동쪽으로 떨어진 곳으로 ‘티모라쏘의 왕국’으로 불리죠. 지중해와 가까워 2000년 전 로마 제국이 지배하던 당시 알바와 콜리 토르토네시는 무역의 요충지였답니다. 소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이 거래되던 곳이죠. 티모라쏘는 중세 시대 때부터 재배한 기록이 있어요. 흙내음도 있어 인삼향이 있는 한식과 잘 어울려요. 피오 체사레나 가야 등 전통이 있는 와이너리도 콜리 토르토네시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요. 바롤로는 충분히 잘 만드니 독특한 산지를 찾고 있는 거죠.”


◆비에티 아르네이스
비에티 로에로 아르네이스는 ‘아르네이스의 아버지’라는 별명답게 아르네이스 품종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잘 익은 감귤, 배, 사과, 복숭아, 멜론, 꽃향이 지배적이며 올리브, 세이지와 바질의 허브향도 느껴집니다. 입에서는 아몬드 풍미가 복합미를 주며 솔티한 미네랄도 매력적입니다. 산도가 또렷하고 균형감이 뛰어나며 우아하고 복합적인 구조, 길고 섬세한 피니시가 매력입니다. 로에로(Roero) 중심부의 산토 스테파노 로에로(Santo Stefano Roero)의 석회질과 점토질에서 자란 아르네이스 100%로 만듭니다. 평균 수령은 30년으로 발효 중간에 탱크를 밀봉, 소량의 천연 CO₂를 다시 흡수시키는 독특한 양조기법으로 가벼운 상쾌함을 더합니다. 산을 둥글둥글하게 만드는 말로라틱(젖산발효)은 안합니다. 대신 3~4주 효모 앙금 숙성을 통해 바디감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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