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배드민턴 코트를 지켜본 팬이라면 ‘역시 안세영’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을 것이다. 그는 올 시즌 다시 한 번 세계 최정상급 기량으로 각종 국제대회를 석권하며 ‘배드민턴 여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 제패 이후 대한배드민턴협회와 갈등을 빚었던 일이 먼 옛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당시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 갈등의 핵심 문제 중 하나는 개인의 권리, 특히 스폰서 계약과 관련된 자율권을 협회가 맘대로 제한한 것이었다. 세계 정상의 스타임에도 안세영은 협회의 규정 때문에 개인 스폰서의 후원을 받을 수 없었다. 개인의 권리가 철저히 묵살됐다는 사실이 선수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제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회적 여론의 압박과 안세영 본인의 확고한 입장 표명은 마침내 배드민턴협회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협회는 관련 규정을 개정하며 개인 스폰서 허용을 받아들였다. 안세영은 결국 7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요넥스와 4년 100억원에 달하는 후원 계약을 체결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 과정은 선수의 개인 권리에 대한 제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다. 협회는 대표급 선수들의 스폰서 계약 권리를 사실상 독점하며 재정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젠 그 파이를 선수와 나눠야 한다. 아쉽게도 한국 아마추어 종목의 후원이라는 파이의 크기는 한정적이라 이것이 한 선수에게 쏠릴 경우 다른 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넥스는 안세영의 후원을 택했고 이로 인해 대한배드민턴협회 측의 수입원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따라 재정수입이 줄어든 협회가 반드시 해야 할 유소년 대표팀 지원, 국제대회 파견, 지도자 교육 등 여러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회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또는 개인과 단체의 이익을 누가 얼마만큼을 가져가야 ‘공정’한가라는 물음이다.
이는 스포츠계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의 연구 성과 귀속 문제, 회사에서의 개인 성과에 대한 보상 문제, 예술계에서의 창작물 수익 배분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반복되는 이슈다.
그러나 중요한 전제는 하나다. 그 균형은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단체가 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스포츠 협회들은 ‘공익’을 명분으로 선수의 권리를 제한해 왔다. 하지만 과연 그 수익이 진정 유소년 육성에 쓰였는지, 행정의 투명성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그 불투명성이 쌓이고 쌓여, 결국 안세영이라는 선수의 폭로와 저항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안세영 사태처럼 ‘개인의 권리와 단체의 이익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더 많이 분출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그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복잡한 현대 사회 ‘공정’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치열한 논의를 통한 사회적 협의가 필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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