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최적의 지리적 위치
우리가 가진 이점 적극 활용해
당당한 파트너로 지분 요구를
한·미동맹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안보환경 인식이 바뀔 때마다 한·미동맹은 흔들리며 재조정의 요구를 받았다. 베트남전쟁에서 물러났던 닉슨 행정부나 9·11 테러로 중동에 집중하던 부시 행정부에서 대대적인 주한미군 감축이 있었다. 심지어 카터 행정부 때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한 억제의 목표까지 희미해진 경우는 여태까지 없었다.
트럼프의 참모들은 미국이 대중견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는 한국을 위해 전력을 소모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대만방어가 우선순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대만전쟁을 대비하는 미군과는 달리 트럼프의 정치적 수사에서 바이든 행정부 당시의 강한 대만 방어 의지는 찾을 수 없다. 한국과 대만 방어가 미국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상황인식은 1950년 그어져 6·25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애치슨라인을 떠올리게 한다. 한·미동맹의 약화를 넘어 분열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열의 조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협상의 극적 타결로 한국은 일본과 유럽에 이어 상호관세율 15%에 합의했다. 불과 2개월이란 짧은 시간 동안 분투했던 신정부로서는 선방했지만, 큰 그림에서 보면 한국은 일본과 유럽에 비해 결코 동등하거나 유리하지 않다. 많은 분야에서 관세율 0%로 수혜를 입던 한·미 FTA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와 안보에서 이러한 극적 변화는 결국 미국이 자신이 만든 기존의 국제경제 질서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나 미국 정치체제의 급변이 발생하면 글로벌 질서의 하위체계인 한·미동맹도 몸살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미 관계에 의해 경제와 안보가 들썩인다는 사실에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얼마나 우리의 발전과 번영에서 핵심적인 요소인지 절감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이달 말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다. 애초에 정부는 경제와 안보의 패키지딜로 접근한다던 계획이었지만, 미국은 각개격파로 대응한다. 통상문제는 일단 관세협상으로 봉합되었지만 동맹안보는 여전히 불안하다. 미국은 재래식 억제를 한국의 주도로 넘기고 주한미군의 유연성과 감축을 관철하고자 할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이나 한국 국방예산의 GDP 5% 인상도 여전히 압박할 것이다. 세계를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트럼프에게 한국은 쟁취하여 승리해야 할 대상이다.
따라서 기존 동맹문법을 무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우리도 다른 문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거래가 쟁점이라면 무엇을 거래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거래란 상대방에게 없는 것이 자신에게 있을 때 성립한다. 미국에는 없고 한국에 있는 것들이 그 대상이 된다. 이번 관세협상에서도 MASGA(미국 조선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로 미국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덕분이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우리가 갖는 또 하나의 결정적 거래수단이 있다. 바로 지정학적 가치이다. 중국의 해양진출은 한반도의 협조와 동의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 반대로 해양세력의 중국 개입도 한반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한국이 이어도 인근을 완벽히 통제하면 중국 북해함대는 보하이만에 갇히고 동해함대의 동중국해 진출도 어려워진다.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려면 한국이 최적의 위치란 얘기다. 최근 중국이 이어도 인근에 불법 구조물을 늘려가면서 서해공정을 지속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부는 우리가 가진 지리적 이점과 제조업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국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구축하고자 하는 질서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파트너가 되어 지분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미경중 같은 낡은 사고를 버리고 우리에게 안보와 경제이익을 모두 줄 수 있는 동맹과 더욱 굳게 손잡아야 한다. 우리의 설계를 국제질서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외교이자 실용외교이기 때문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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