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가 기승을 부린 8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 국제선 터미널 1층 대합실. 로비의 동쪽과 서쪽 TV 앞 의자에는 40여명의 노인들이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운동화를 신은 채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일부는 피서지를 가 듯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있었다.
이들 노인들은 대부분 30도를 웃도는 폭염을 피해 공항으로 나 온 ‘공항 피서족’이다. 노인들은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하루 종일 있을 경우 에어컨 비용을 감당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시켜 놓고 하루종일 있는 것은 눈치가 보여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유난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씨에는 공항 보다 좋은 피서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김포공항은 수도권 어디서나 지하철로 연결되는 편리한 교통여건 때문에 공항은 노인들의 ‘피서 성지’로 꼽히고 있다. 만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은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이기때문에 교통비가 들지 않는 것도 공항이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는 이유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이경욱씨(70)는 “김포공항 대합실은 추울정도로 시원한데다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어 친구들과 매일 온다”며 “서울시내에서 이만한 피서지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포공항은 쇼핑몰과 바로 연결되는 장점때문에 노인들의 피서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합실에서 TV를 보다 지루하면 쇼핑몰로 옮겨 쇼핑객을 보거나 윈도우쇼핑을 할 수 있는 차별화된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공항 대합실로 이동하고 중간에 쇼핑몰로 옮겨 다닐 경우 걷는 거리도 만만치 않아 운동효과 마저 볼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공항 대합실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거나 쇼핑몰 식당가에서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공항 피서지를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부부나 친구들끼리 단체로 공항을 찾는 노인들고 있다. 동네 친구들과 왔다는 박모(75·여)씨는 “도시락과 커피를 준비해와 먹을 수 있어 돈 한 푼 안 들이고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공항이다”고 말했다.
최모(81)씨는 “무료하게 집에 있으면 시간도 안 가고 냉방비도 무시 못해 여름 한 철은 집사람과 함께 공항에 와서 시원하게 보낸다”고 밝혔다.
또 노인들은 “여행을 떠나거나 갔다 오는 사람들 얼굴이 모두 환해 보여 좋다”며 “외국인과 종종 연예인들 보러 오는 젊은이들을 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얘기했다.
이들 공항 피서족들은 인천공항을 번갈아 가면서 여름을 보내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기분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의 한 환경미화원은 “일부 어르신들은 돗자리까지 갖고 와 공항 구석에서 편하게 피서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원한 곳에서 여행객 구경하다 보면 지루하지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많이 오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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