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와 감독, 제작자, 기술자, 작가 총 8469명이 꼽은 지난해 최고의 영화는 다름 아닌 한국영화 ‘기생충’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달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 이어 10일 미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트로피 4개를 싹쓸이하면서 그간 외국어 영화에 철옹성 같던 할리우드의 장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백인·남성 중심의 보수적 성향이 강한 아카데미 시상식이 전환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품상 수상 “이변 중 이변”
봉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지역영화제)”이지만 오스카는 세계 영화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의 최대 영화상이란 점에서 이번 수상의 의미는 엄청나다. 기생충은 무엇보다 ‘1917’과 ‘아이리시맨’,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등 세계적 거장들의 쟁쟁한 경쟁작을 제치고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오스카 92년 역사상 작품상을 받은 첫 외국어 영화.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동시에 받은 첫 작품. 이렇듯 기생충은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다. 그런 만큼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을 넘어 감독상, 나아가 작품상까지 기생충이 받은 건 영화 전문가들이나 외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관객들을 제1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과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나눠 가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변 중의 이변”이라 할 만하다.

이뿐 아니라 ‘기생충’은 세계 영화사를 새로 썼다. ‘마티’(1955) 이후 64년 만에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2번째 작품이 됐다.
또 7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을 받은 6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프랑스 영화인 ‘흑인 오르페’(1959)와 ‘남과 여’(1966), 서독 영화 ‘양철북’(1979), 덴마크 영화 ‘정복자 펠레’(1988), 오스트리아 영화 ‘아무르’(2012)만이 두 상을 품에 안은 바 있다.
아시아로 범위를 좁혀 봐도 이번 오스카 시상식은 대이변이다. 아시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건 오스카 역사상 처음이다.
봉 감독은 또 아시아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2번째로 받아 든 감독이 됐다. 대만 출신의 세계적 거장인 리안 감독만이 먼저 오스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리안 감독은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라이프 오브 파이’(2012)로 감독상을 2차례 받았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어로 된 ‘기생충’은 국제 시장에서 유례없는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했다.

◆찬사 일색 외신 평가
많은 해외 매체가 ‘기생충’의 성과에 대해 “오스카 역사를 다시 썼다”고 입을 모았다.
CNN은 작품상 수상에 대해 “가장 선두주자로 꼽혔던 화제작 ‘1917’을 제치고 이뤄낸 놀라운 성과”라고 전했다.

AP통신은 “아카데미가 한국으로 눈을 돌려 사회적 불평등을 그린 ‘기생충’에 보상을 했다”며 이를 “세계를 위한 승리(a win for the world)”로 평가했다. 영화 제목 ‘기생충’처럼 아카데미 회원들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가 미국 영화상 시상식에서 새 역사를 썼다는 설명이다.
외국어 영화로 이뤄낸 쾌거라는 점도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초로 외국어 영화로 최고상을 수상하며 놀라운 밤을 장식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금껏 어떤 한국영화도 할리우드 최고상에 후보로 오른 적이 없었다”면서 “한국영화 ‘기생충’의 수상은 국제영화에 대한 오스카 유권자들의 관심이 증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진영·정지혜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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