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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미래다] 대한민국 40만명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

입력 : 2016-06-15 19:16:57 수정 : 2016-06-16 15: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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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과다 업무에 삶 피폐… 40만명이 ‘공무원 바라기’ / 잦은 야근·눈치 휴가·이른 명예퇴직…사기업 취업자들도 사표 내고 합류 / 9급 공채 22만여명 몰려… 역대 최다/ 채용인원 늘려도 경쟁률 되레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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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명문대학 출신 한모(32·여)씨는 8년 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업했다. 입사 4년 만에 대리로 승진하며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고, 곧 과장 승진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한씨는 얼마전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이 ‘취업난’과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상기시키며 만류했지만 한씨의 뜻은 확고했다. 한씨는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눈치 휴가 등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보니 삶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며 “최근 동료 눈치를 보며 어렵게 육아휴직을 쓴 이후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여자 선배와 40대 후반에 명예퇴직 명단에 오르내리는 선배들을 보고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2. 지난해까지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김모(31)씨는 최근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무원 체질이 아니다”고 큰소리를 쳐왔던 김씨이지만 대기업에 지원서를 낼 때마다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낙방하고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김씨는 “서울지역 삼류대학을 나와 부모님이 평범한 직장인인 나 같은 ‘흙수저’에게 대기업의 문은 너무 좁았다”며 “중소기업도 생각해 봤지만 요즘 중소기업 회사원은 결혼은커녕 소개팅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자조했다. 그는 “그나마 ‘헬조선’에서 가장 공정한 게임이 가능한 것이 공무원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숨 쉬었다. 김씨는 ‘돈벌이 수단’으로 공무원을 택한 것에 대해 “요새 누가 적성 따져가며 공무원을 하느냐”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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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

대한민국의 공무원 시험 준비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생부터 40세가 넘은 주부와 퇴직자까지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정부가 청년실업 해소 및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공무원 신규채용을 늘리고 있지만 공시생은 이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5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 총 22만2650명이 지원해 역대 최다 접수인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9만987명보다 16.6%나 늘어난 수치다. 채용인원을 지난해 3700명에서 4120명으로 대폭 늘렸지만 경쟁률은 53.8대 1로 오히려 더 올라갔다. 지원자는 20대가 14만2002명(63.8%)으로 가장 많았지만 40대와 50대도 각각 9756명, 957명으로 4.8%를 차지했다. 이 시험의 최고령 합격자는 57세였다. 지방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행정자치부는 지난해(1만7561명)보다 15%가량 많은 2만186명을 올해 신규채용한다고 밝혔다. 역대 최대 규모 채용이지만 이 중 1만1359명을 채용하는 9급 시험에만 21만2983명이 지원했다. 평균경쟁률은 18.8대 1이지만 대전(32.3대 1), 광주(30.9대 1) 등 일부지역에서는 30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중복 지원자 수를 제외하면 전국 공시생은 4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기 침체기에 채용규모를 줄이는 일반 기업과 달리 공무원 신규채용의 문은 넓어지면서 공시생 수가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 수업 중인 공시생들의 진지함을 창 밖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자료사진
◆‘정년과 저녁이 있는 삶’ 추구하는 청년들


정작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은 “정년을 장담할 수 없고 공무원 연금도 이전에 비해 확 줄었다”, “야근도 잦고 업무 강도도 세졌다”, “관피아 논란으로 산하기관 낙하산도 없다”며 녹록지 않은 현실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기업에 비해 근무여건과 복지가 월등히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시생들이 첫번째로 꼽는 공무원 지원 배경은 안정성이다. 일반 직장인은 40대 후반부터 명예퇴직과 구조조정이라는 말에 새가슴이 되지만 공무원에는 늘 ‘철밥통’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대기업에 비해 토익이나 학점 등의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기업 채용과정에서 좌절한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전향’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최근 청년들의 삶의 지향점이 돈이나 성공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을 향한다는 점이 공시생 증가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공무원 월급이 ‘쥐꼬리’라는 것도 옛말이다. 공무원 기본급에 정액급식비·직급보조비·정근수당·명절휴가비 등을 고려하면 9급 지방직의 초임 연봉은 중소기업보다 나은 2600만∼2700만원 수준이다.

주말마다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는 은행원 김모(34)씨는 “금융권에서 공무원은 퇴직 이후에도 산하기관에 자리를 꿰찼다”며 “은행 연봉이 높다고 하지만 업무강도와 정년을 따져 볼 때 공무원이 낫다고 판단해 더 늦기 전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안전망·삶의 안전성이 해체되면서 공무원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며 “여기에는 1997년 외환위기 등 구조변동을 뼈저리게 겪었던 부모의 간섭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전통적인 기준에서는 소박했던 직업인 공무원도 이젠 ‘쟁취’의 대상이 된 것이 요즘 청년의 비극”이라며 “고용환경 개선, 사회안전망 구축이 자주 대안으로 언급되지만, 한국사회의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철학을 재정립해야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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