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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그해 여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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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24 22:51:09 수정 : 2025-07-24 2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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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지역 폭우까지 덮쳐
이재민 고통·슬픔 얼마나 클까
재해의 상처는 평생 갈테지만
사회가 살아갈 힘 실어드려야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공존하면 두 배로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올여름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건물과 도로, 범람하는 하천을 뉴스로 접하며 마음이 찢어졌다. 지난 3월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이 또다시 폭우로 인해 엄청난 일을 겪었다는 소식에 나 자신이 물과 불과 흙더미에 뒤덮이는 것 같았다. 나도 당해봐서 안다. 이재민분들의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크실지 체감할 수 있다. 재해의 상처는 평생 갈 것이지만, 우선 사회적 관심과 지원으로 그분들에게 살아갈 힘을 실어드려야 한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나는 좋아한다. 나의 읽기와 쓰기는 상승기류로 부딪쳐도 위험하지 않다. 수재나 화재, 전쟁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두 가지의 고요한 행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게 하고, 세상 문제에 질끈 눈감지 않게 하며, 무엇보다 사랑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어떻게든 사랑의 절벽으로 이끈다. 다행히도 히틀러나 진시황처럼 책에다가 불온, 퇴폐, 위험 등의 낙인을 찍어 불태워버리는 이는 더 이상 없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들을 검열하고 수거해서 갖다 버리게 했던 최근의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내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애통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라서 글이 태풍을 만난 불씨처럼 이리저리 튄다. 오늘 오전에 부고를 접했다. 최종천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나는 그분을 뵌 적 없지만, 작년 초 아르코 창작기금지원 심사를 보면서 그 시인의 작품을 꼼꼼히 읽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이었는데 깜짝 놀라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읽어나갔다. 거기에는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사람들을 향한 애정 어린 고백, 재개발 깃발 아래 짓이겨지는 동네에 관한 정직한 기록들, 부동산에 미친 대한민국과 노동 착취의 현장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최종천 시인의 시들이 드물고 귀하다고 생각했다.

최종천 시인은 195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1970년대 초부터 용접공으로 일하셨다고 한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이렇게 단언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최후의 노동시’라고 부르는 것이 온당하겠다”라고. 시인은 노동하며 읽기와 쓰기에 매달리셨을 것이다. 끼니와 잠을 거르기 일쑤였을 것이다. 쓰러지기 전까지 누구보다 고독하셨을 것 같다.
 

그 해 여름은 무더웠다/(중략)/고깃값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며/거적대기에 싸인 영철이가/살 냄새 땀 냄새를 풀어놓으며/썩어가던 장마철 내내/추석 상여금 얘기와/여자 얘기만 했을 뿐/아무도 영철이의 죽음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최종천 그해 여름 부분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대부분 몸이 아프거나 가난하다. 몸이 아프면서 가난하기까지 한 작가들도 있다. 시인을 꿈꾸는 이가 볼까 봐 노파심에서 덧붙이는데, 시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안정적인 직업군의 시인들도 적지 않다. 전업 시인들도 없지 않다. 내가 놀자고 하면 일하러 갈 시간이라며 가버리는 시인도 많다는 거다. 일산소방서 근처 편의점에서 밤부터 아침까지 아르바이트하는 시인, 인천공항에서 하역 운반하는 시인, 꽃집, 책방, 카페, 학교에서 시간제로 일하는 시인들, 학원 셔틀버스 운전하는 시인, 쿠팡 배달하는 시인도 있다.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내가 아는 시인들은 강인한 척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정이 많고 섬세하며 유약하다. 그런데 자신보다 타인을,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다. 왜 그럴까? 읽고 쓰는 시간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잘 쉬지도 못하고 어떻게든 책상에 붙어 있을 시간을 만들어서 자신을 혹사해야 스스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시인들. 그래서 작가들의 평균 수명이 그렇게 짧은 걸까? 아무튼 나는 오늘 계절학기 강의 마치면 곧바로 아픈 시인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가기로 했다. 왕복 다섯 시간 넘게 전철과 기차를 타고 가서 두어 시간 만나게 되겠지만. 그녀들을 침상 옆 책상에서, 카페 주방에서 떼어놓고 같이 우산 쓰고 천변을 걸을 것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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