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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생각의 차이가 만든 큰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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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24 22:51:17 수정 : 2025-07-24 22: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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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병에서 원통으로 환원시켰다면 나는 원통에서 병으로 환원시키겠다.” 피카소만큼 유명하진 않았지만, 입체파의 후기 경향을 선도했던 스페인 화가 후안 그리스의 말이다. 이 말이 입체파의 또 다른 특징을 만들어냈고 이후의 미술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통, 원추, 구로 환원하여 나타내서 그림의 입체적 구조를 살리려 했고, 이 방법을 한층 더 심화시켜 초기 입체파가 탄생했다. 사물을 전후좌우 360도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석하고 해체한 후 화면 위에 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서였다.

후안 그리스 ‘선 블라인드’(1914)

그리스는 세잔과 입체파의 초기 방법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의도를 보였다. 자신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시작해서 일상 사물인 병들을 연상시키는 그림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사물과는 독립적인 관념적이며 기하학적인 형태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림을 구성하려 했다.

‘선 블라인드’가 그 예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선 블라인드와 책상의 부분적인 형태가 있고, 신문 표제어가 보인다. 가운데에 있는 꺾인 파란색 면은 단지 기하학적인 형태일 뿐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림 안의 모든 것이 실제의 사물을 근거로 하기보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그가 의도한 것은 이런 기하학적 형태들로 선 블라인드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아침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을 계기로 예술가들은 좀 더 자유로워졌고 그들을 구속했던 다른 한계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한 가지 예로 다양한 일상 사물을 물감처럼 그림의 매체로 사용하게 된 것을 들 수 있다. 신문지 조각이 그림의 구성 요소로 사용된 점이 피카소에게 영향을 미쳤고 색 면만으로도 미술작품이 된다는 생각이 추상화의 탄생과 유행으로 이어졌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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